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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May 21. 2019

시간을 만드는 사람들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기는 싫으니까

‘생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우습다. 사실,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있을까. 아침에 눈을 떠서 침대에 5분만 더 있다가 일어날까 지금 일어날까를 결정하는 것도 생각인데 말이다. 걷고 손을 움직이는 모든 행동이 다 생각의 결과인 만큼, 하루는 생각의 시간으로 꽉 차 있을 수밖에 없다. 별도의 생각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다. 게다가 그렇게나 생각이 하고 싶다면, ‘생각을 하고 싶다’고 생각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생각을 더 하겠다 싶다. 


그런데 ‘생각을 하고 싶다’는 말은 마치 ‘책을 읽고 싶다’ 거나 ‘여행을 가고 싶다’는 표현처럼 특별한 지원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책을 읽기 전에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고, 책의 표지를 보며 어떤 내용의 이야기가 펼쳐질지 상상을 하고, 책장을 넘기다 잠시 밖을 쳐다보며 읽었던 부분을 다시 되뇌어 보는 등 책을 읽으려면 이렇게 주변 환경을 미리 정리해 놓고 시작하는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 준비의 시간이 뭔가 부담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집중의 분위기를 갖추자는 것, 그 정도일 뿐이다.


‘생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이유는, 집중의 분위기를 갖추는 것이 다른 일에는 비교적 간단해 보였지만 생각을 위한 것에는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생각으로 가득 채워진 하루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생각으로 채워진 하루가 아니라 선택으로 채워진 하루가 아닐까 싶었다. 오늘 점심은 무슨 메뉴로 할까, 가방은 어떤 걸로 살까,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 무엇을 할까 등의 고민은 생각이 아니라 선택이다. 몇 가지의 옵션 중 마음이 가는 항목으로 결정하면 그만이지 이런저런 큰 분석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루는 대개 이러한 선택의 연속이다. 심지어 일도 그랬던 것 같다. 쳐내야 할 일들은 너무 많았고, 빨리 선택하여 결론을 짓고 다른 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어떤 상황에 처해진다 한들, 진지한 생각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다 처리한 후로 미루어졌고, 모든 일을 다 처리한 후에는 피곤한 몸을 소파에 뉘어 TV를 보거나 스르르 잠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생각을 뒤로 미루는 이유는, 생각이 어렵기 때문이다. 나를 돌아보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내가 지닌 단점을 제대로 알게 되었을 때, 고쳐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창피한 마음에 숨어버리고만 싶을 것 같다. 잘못한 것을 되짚어 보는 것 또한 두렵다, 그저 이렇게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훨씬 크다. 꿈을 정리해 가는 것 또한 많은 시간이 걸린다. 공상은 쉽지만, 꿈은 나의 다짐과 도전 의지 그리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서 감히 지금 당장 생각의 시간을 갖겠다는 결심은 쉽게 하지 못한다. 너무 중요한 이슈라 집중의 분위기가 꼭 필요하다. 그런데 무서워서 뒤로 미루고, 내일로 미루고, 주말로 미루고.. 그렇게 생각의 기회를 저 멀리 날려버린다.


진지한 생각이 절실하다는 결심이 서자, 생각하기를 하루의 첫 임무로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집중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로 했다. 눈을 뜨고 일어나는 순간부터가 내 시간의 시작인만큼, 내가 일찍 일어날수록 내 시간은 늘어난다. 시간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늦게 자는 것은 시간을 만드는 방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기 전의 TV 시청이나 스마트폰 검색은 지친 하루를 보낸 보상의 시간과 같은 느낌이라 전혀 죄책감 없이 이어갈 수 있었지만, 이른 아침의 TV 시청이나 스마트폰 검색은 차라리 잠을 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난이도가 높은 다짐일수록 혼자 진행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시간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기를 목표로 삼고 있는 몇몇을 만나 몇 개월 째 실천 중이다. 


무엇을 하는지는 상관없이 그저 아침 일찍 일어나기를 위한 모임이기에, 아침에 하는 일들은 다양하다. 나야 운동을 하고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일찍 일어나지만, 영어 공부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운동을 하거나 글을 쓰는 등 그들이 아침에 하는 일들을 보면, 스스로를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던 자부심이 얼마나 건방진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이렇게 약한 연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습관을 형성해 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여하튼, 덕분에 생각하기를 첫 번째 일과로 시작하는 기분은 상쾌하다. 그리고, 생각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류의 푸념이나 아쉬움이 줄어 들어서 다행이다.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알아 가면서, 이제야 나 자신과 친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다.


가능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이렇게 계속 시간을 만들어 갈 계획이다.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기는 싫으니까.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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