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집을 더럽히는 방법을 안다. 아이와 함께 장을 보고 돌아오면 된다. 외출 시 갖고 나갔던 유모차와 기저귀, 물티슈, 물, 과자 등이 들어있던 가방, 아이의 코트와 목도리를 비롯하여 내가 입었던 코트와 장바구니 등이 금세 식탁과 거실 바닥에 널브러진다.
이어지는 흔한 풍경은 이렇다. 마치 장난치는 것 마냥 도망 다니는 아이를 겨우 따라잡은 후에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다, 내가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들고 나갔던 아이의 가방을 정리한다, 장바구니를 정리한다. 족히 20분은 걸리는 작업이다.
얼마 전의 에피소드다. 남편도 동행했던 외출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으레 진행되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다. 이제 막 아이의 옷을 갈아입혔을 때인데, 남편이, 아니 이 남자가, 아니다 이 인간이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느긋하게 식탁에 앉아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면서 이미 지쳐있던 터라, 언성을 높일 기운조차 없었다. 홀짝홀짝 맥주를 들이키는 이 인간 앞에서 겨우 마음을 추스른 채, 나도 정리를 멈추고 캔맥주를 집어 들었다.
며칠 뒤, 동생 부부와 티타임을 갖던 중 이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어떻게 이 상황에서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비슷한 표정의 두 남자들에게 상상도 못했던 답변을 받았다. 이게 왜 질문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저녁을 먹으면서 식탁을 쓰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때 자연스럽게 식탁을 치우게 될 것인데 왜 굳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치워야 하냐는 것이었다.
아.
당신들은 정녕 어느 별에서 오셨나요.
어떻게 우리는 지구에서 만나 같이 살게 되었나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안 정리 정돈에 대한 다툼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닌가 보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가사/휴식 균형 잡기’라는 소제목에 매혹되어 구입하게 된 책, 워싱턴포스트 기자 브리짓 슐트의 ‘타임 푸어(TIME POOR)’를 읽다 보면, 저자 역시 남편과 비슷한 내용으로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집안일을 다 나한테 맡겨놓고 그렇게 빈둥거릴 수 있는 거야?” 남편은 내 눈높이가 너무 높다고 되받아 쳤다. “당신은 만화에 나오는 마지 심슨이랑 똑같아. 그 여자는 집이 불타고 있는데도 싱크대에 더러운 접시가 있는 걸 못 참아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잖아.” 남편은 이런 말도 곧잘 했다. “남자들은 지저분한 데서도 잘만 살아.”
심슨 시리즈를 보지 못해서 몰랐지만, 불타는 집에서도 더러운 걸 참지 못해 설거지를 하고 있는 마지 심슨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웃겼다. 그렇다, 엄마들은 집이 더러운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결혼 전 엄마의 정리 정돈으로 언제나 깨끗한 각자의 집에 익숙했던 우리는, 결혼 후 순식간에 신혼집을 돼지우리로 만들어 버렸다. 남편도 나도 둘 다 우리 스스로 치워야 한다는 사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분담을 한다고 해도 회사 일에 둘 다 지쳐있던 평일에는 손을 놓기 일쑤였다. 가끔은 집에 들어가기 싫은 수준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라는 타이틀이 추가되자, 마치 내 눈은 잠자리 눈이라도 된 마냥 한 번에 사방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기어 다니는 아이가 무엇을 집어 먹지는 않을까, 이제 막 걸어 다니는 아이가 무엇을 잘못 밟아 넘어지지는 않을까, 이제 새끼 발을 들면서 식탁 위며 책장 위의 물건들을 마구 떨어뜨리는 아이가 무엇을 잘못 만져 다치지는 않을까. 위험 요소들 투성인 집을 언제나 정리 정돈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되자, 먹이거나 놀아주는 시간 외에는 언제나 청소 상태로 돌입했다.
이제 아이가 어느 정도 스스로 신경을 쓰는 시기가 되었다. 이렇게 하니 넘어지네, 이 물건은 여기를 만지면 아프네, 여기는 털썩 앉아도 푹신하네 등 스스로 학습을 통해 조금씩 알게 되는 사항들이 생기니 사건 사고의 빈도수가 줄어들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청소 중이다. 빨래 중이다. 아직 몇 시간이나 남은 다음 식사 걱정 중이다. 설거지 중이다. 아이를 위협하는 위험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며 당장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내가 청소를 했는지 설거지를 했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이런 식으로 육아와 집안일에 지친 후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오늘 역시 나를 위한 시간은 십분 조차 없었다는 사실에 서글프다.
그런데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남편이 나중에 자연스럽게 치우게 될 것인데 왜 지금 고생해야 하는지 궁금해하고 지저분한 데서도 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한다면,
엄마는 왜 자신의 일은 뒤로 미룬채
스스로에게 온갖 집안일을 강요하며 자진해서 힘들게 사는가.
결국에는 학습된 습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역시나 같은 책 ‘타임 푸어(TIME POOR)’를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여가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딸들은 엄마를 보면서 여가에 관해 배운다. 그런데 엄마들은 대개 집안일에 먼저 손을 대고 자기 자신을 맨 나중에 챙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딸들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가르치게 된다.
스스로 내 순위를 뒤로 미룬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중요도를 낮게 잡는다. 정확하게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육아만큼이나 집안일 역시 당연히 엄마만의 업무라고 여기는 분위기 탓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순위 조정은 내가 하는 거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거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제 의식적으로라도 내 순위를 상향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지금 당장 30분, 한 시간 집안일에서 손을 놓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건 아니니깐.
지금 우리 집 싱크대도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기는 하지만, 잠시 손을 놓으련다. 이래도 되는 것인지 잠깐은 불안하겠지만, 마음을 잡아보련다. 남편의 논리대로라면, 다음 식사 때 접시들이 필요할 테고 그때 자연스럽게 치우게 될 테니 말이다. 바로 지금,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있던 책을 펼쳐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