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한 희생을 거부한다

가족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당연히 엄마도 아빠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by Kim Ji Youn
“엄마가 되었으니, 가족의 행복을 위해 희생할 줄도 알아야지”

이해가 안 가는 말 중 하나다. 문장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 엄마도 가족의 구성원이다. 때문에 희생한 엄마도 행복해야 진정한 가족 모두의 행복이다. 아직까지는 희생해서 행복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표현할 수 있는가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했던 이번 글의 초안을 완전히 뒤집었다. 글을 먼저 읽어보던 남편의 반응 때문이다.


‘엄마의 자존감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글 쓰기를 결심한 후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결국 엄마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펼쳐질 텐데 관련 글들이 엄마들끼리'만'의 공감, 이것으로 끝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엄마가 힘들다면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엄마가 기대고 싶고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 즉, 남편들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도록 쓰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글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평소에 말로 나누지 못했던 생각들을 서로 알게 되면서, 더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시간이 덤으로 주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희생은 엄마만 하나? 아빠의 입장에서, 마치 가족을 위해 엄마만 희생하고 있다는 글로 비쳐서 반발심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된 버지니아 울프의 ‘여자들을 위한 직업 Professions for Women’ (코벤트리 팻모어 Coventry Patmore의 시 ‘가정의 천사 The Angel in the House’를 풍자하여 쓴 글)을 막 읽었던 터라, 사회에서 요구하는 엄마의 의무와 책임에 불만이 한껏 올라와 있는 상황이었다. 명절만 지나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불협화음 에피소드들과 잊을만하면 카페에 올라오는 워킹맘 혹은 엄마로서의 힘든 삶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처음에는 남편의 반응에 수긍이 가지 않았다.


직장인 시절, 낮시간에 커피를 마시는 엄마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의 입장이 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된 후, 편견을 갖지 말자는 다짐을 줄곧 하곤 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관계에서는, 엄마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 아빠라는 입장의 신발을 신어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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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난 후, 둘 만의 대화 시간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대화 시간이 사치로 여겨질 때도 종종 있다. 대화가 시작된다고 해도 금세 육아로 주제가 바뀌곤 한다. 내가 오늘 어떠한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남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서로 확인하고 공감할 시간도 없이 다가올 내일을 준비한다. 남편은 늘 아쉬워했다. 아내에게 본인이 항상 1순위였는데, 엄마가 되면서 자신은 관심 밖으로 내쳐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한 번은 아이와 온종일 하루를 보낸 후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퇴근 후 남편의 존재가 부담스러운 시기가 있었다. 아이와 남편 모두 잠이 든 후에야 온전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때였다. 이 얘기를 남편에게 한 적이 있었는데 큰 충격으로 다가갔던 것 같다. 가정에서 본인의 위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던 듯하다. 이후, 남편은 퇴근 후 아이와 적극적으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더 이상 퇴근 후 남편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지지 않았다.


사실 남편의 모습도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아빠들도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원하고 있다. 아빠가 주도하는 육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고,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아빠들도 작게나마 늘어나고 있다. TV에서 잘생긴 연예인 아빠들의 육아 분투기를 보고 있노라면 아빠들의 마음도 조바심이 난다.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아빠의 모습은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다. 아빠들 역시, 스스로 부족한 아빠는 아닌가 끊임없이 자문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경기와 남의 얘기 같지 않은 구조조정, 명예퇴직 이슈 역시 아빠를 끊임없이 눈치 보게 하고 있다. 아빠도 힘들다.


그렇다면 가족의 행복을 위한 누군가의 희생은 꼭 필요한 것일까?
가족을 위한 사랑이 희생일까?



희생은 일방적이다. 하지만 작게나마 대화를 할 수 있고, 서로 상대방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있다면 희생이 아닌 상호 간의 배려와 양보가 가능해질 것 같다. 어떠한 이유든, 엄마든 아빠든, 의무감이나 주변의 시선으로 인한 강요된 희생은 끝이 좋을 수가 없다. 희생을 안고 살아야 하는 구성원이 감내해야 하는 심적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내적 어려움을 밖으로 표출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 역시 힘들어질 수밖에 없으며, 안타깝게도 혼자 끙끙댈 수밖에 없다면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도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회의 같은 대화가 아니라, 해결책을 위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대화 말이다.


엄마가 힘들다는 것을 표현하고 도움을 받으려면 서로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힘들다는 것을 나열하기만 한다면, 역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온 남편에게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될 테고 대화의 단절로 이어지기 쉽다.


소통. 배려. 경청.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조직에서 강조되는 사항이지만, 이것은 회사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행복한 가정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출근 전 이 글의 초안을 두고 서로 억울한 이야기만 하며 헤어졌던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본인도 배려에 대한 실행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는 내용이다. 섭섭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내가 더 잘 해야겠다는 다짐이 선다.


편을 갈라 싸우지 말고 서로 공감하자. 희생을 요구하지 말고, 서로 배려하고 서로 양보하자.



그렇게 해서 가족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당연히 엄마도 아빠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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