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잘 아는, 중심이 되는, 배려받는 공간

by Kim Ji Youn

직장 생활에는 여러 가지 장단점이 있지만, 장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다양한 환경 속에 나를 밀어 넣고 끊임없이 적응하게 만든다는 것일 듯하다. 얼핏 들으면 직장 생활의 단점을 장점으로 잘못 쓴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장점이라고 쓰고 싶다.


예전 직장 생활을 돌이켜보면, 이직이나 팀 변경 그리고 업무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에 따라 나에게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상사만 해도 그렇다. 끊임없이 격려해주는 상사가 있었다. 연이은 야근으로 힘들어하는 팀원들을 불러놓곤 각자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하며 웃게 만드는 상사였고, 우리는 피곤함을 잊은 채 다시금 업무 모드로 돌입할 수 있었다. 한 상사는 퇴근길에 "지금처럼만 해라, 팍팍 밀어줄 테니"라는 메시지를 남겨 어떻게 하면 더 인정받을 수 있을까 매일매일 전의를 불태우기도 했다. 반면, 점점 입을 다물게 만드는 상사도 있었다. 내 의견은 의미가 없었고, 점점 위축되어 갔다.


다크서클이 길어져도 보람찼던 상황을 떠올리면 지금도 즐거운 추억으로 여겨지지만, 의기소침했던 시기를 생각하면 속상하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모습 전부 나 자신이다. 으쌰 으쌰 할 수도 있고, 뭔가에 빠지면 가뿐하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도 있고, 나설 줄도 안다. 반면, 자신감이 없어지면 집중력도 부족해지고,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해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며 의욕을 상실하기도 한다. 모두 어떠한 환경 속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한 결과이고, 모두 내가 보여주는 나의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나의 대처 방법이다.

내가 이러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면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그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기만 하다면 문제다.


한 친구는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던 프로젝트 결과 탓에 지나치게 오랫동안 자기비판에 빠져있었다. 다른 친구는 오랜 경력단절 탓에 예전의 자신만만했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감을 잃어버린 채 연락을 끊고 숨어있기도 했다.


직장 생활 중 견디기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먼저 나를 바꿔보기도 하고 업무 변경 등 환경에 변화를 주어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적응시키려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전업 주부로 지내며 행동반경이 비교적 줄어들게 되거나 집과 회사 모두 잡아야 하는 업무 과부하 상태가 되면, 이 상황을 이겨내고 적응시키려 는 노력이 조금은 어려워지는 것 같다. 업무의 경우 바꿔보거나 마무리를 할 수 있고, 해당 프로젝트가 끝나면 되돌아보고 개선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집안일과 육아와 관련된 일인 경우, 제한된 범위 내에서 몇 년이고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기 때문에 미리 제풀에 지쳐 쓰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 맞지 않은 상황에 체념하기 일쑤이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사는지 힘들어한다.



바로 이럴 때, 스스로를 일깨워주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제일 잘 아는,
내가 중심이 되는,
내가 배려받는 공간을 의도적으로 연출해보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인정하고 있다면, 나를 북돋아줄 수 있는 상황도 금세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위한 환경 조성은 집 인테리어 같은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이처럼 다짐이나 분위기 등의 심리적인 것 역시 포함된다.


칭찬을 통한 동기부여가 내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면, 의도적으로 칭찬을 유도해보면 어떨까. 작은 사항일지라도 남편이나 가족들에게 당당하게 칭찬을 요구해보자.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칭찬받을 만한 거리를 찾는 것이 영 민망하고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의 업무가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주변 사람들이 나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는 기회를 덤으로 얻게 될 지도 모르겠다.


성취감이 중요하다면, 마치 이력서를 작성하듯 내가 엄마로서 혹은 나 스스로를 위해 이루어낸 일들을 리스트화 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매달 읽은 도서 제목과 함께 짤막한 소감을 리스트화 하여 계속 업데이트한다면 축적되는 데이터에 자신감 또한 축적되어 갈 것이다. 이번 달에 아이의 수학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면, 관련 경험담을 기록해 두는 것도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혹시 아는가. 이런 사례들이 늘어난다면 책이라도 출간하게 될지 말이다.


결국, 나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기 위함이다.

엄마의 자존감은 이렇게 일상생활 중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확인받는 과정에서 높아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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