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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Sep 30. 2019

풍요롭게 나이 들고 싶다

배우는 습관이 생기면 가능할지도

남은 한 해를 자기 계발의 시간으로 보내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덕분에 주 5일 오전 시간을 바쁘게 ‘소비’하고 있는 중이다. 오전 시간을 열정적으로 보내고 있다는 식의 표현은 감히 하지는 못하겠다. 스케줄이 잡혀 있으니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 성장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그저 이 시간을 ‘낭비’ 하지는 말자는 다짐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평일 오전 10시부터 내가 만나는 분들은 모두 ‘어르신’ 들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을 만난 적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내 또래의 엄마들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주 2회 수영장을 간다. 손자, 손녀들을 등원시키고 수영을 배우러 오시는 나이 지긋한 부부도 있고, 지식들 모두 출가시키시고 이제 남은 것은 건강뿐이라며 뒤늦게 수영에 입문하신 할머니들이 우리 클래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 3회 참석하는 영어 학원 역시, 60세 후반이신 분이 세 분이나 계신다. 나를 제외한 막내 분은 나이 50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무색하게도 그들의 영어 실력은 매우 뛰어나다. 이 분들의 나이에, 이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공부를 하셨을까 싶을 정도다.


수영도 영어도 모두, 첫 시간에 참석했을 때는 내가 잘못 들어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또래와 함께가 아니고서는 ‘재미’라는 것을 찾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어 학원은 시간을 바꿔야 할지 고민도 잠시 했었다. 그런데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거르지 않고 참석하다 보니,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가 하나 생겼다.


나는 어떻게 나이를 먹을 것인가.


마침, 영화 <북클럽>을 보았다.


“라이프 스타일은 다르지만 20대부터 한결같은 우정을 쌓아온 ‘북클럽’ 4인방
우아하고 품격 있는 그녀들이 한 권의 특별한(?) 책을 만나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녀들의 특별한 책은 다름 아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다. 몇 십 년을 책과 함께 성장해온 주인공들이 이 책을 접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펼쳐지는데, ‘로맨틱 코미디’라는 분류와는 달리 여기서도 나는 수영장과 영어 학원에서 마주치는 어르신들을 떠올렸다. 


사랑을 통해 인생의 또 다른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자 하는 이 영화의 전개는 ‘독서’라는, 젊은 시절부터 출발한 그들의 오래된 습관에서 시작된다. <북클럽>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화제의 책에 포커스를 두고 사랑 이야기를 전개해 가지만 나는, 젊었을 때부터 함께 독서를 접했고, 그로부터 성장해 갔으며, 앞으로도 여전히 책을 중심으로 그들의 인연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 더 끌렸다. 물론 영화 속의 설정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늘 책을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며 성장해 왔던 것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멋졌다. 


<북클럽> 4명의 주인공 그리고 내가 수영장과 영어 학원에서 만난 어르신 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것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배움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무언가를 익히고 공부했던 사람은 성장의 경험을 갖고 있을 테다. 그 경험은 나이 들어서도 낯설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성장의 짜릿함을 알고 있기에, 쉬고 싶고 적당히 시간을 보내도 되는 나이에도 뭔가를 계속 배우고 싶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학원의 경우 하나의 주제를 갖고 토론을 하다 보면 내 또래에서는 나올 수 없을 법한, 내 기준에서는 옛날 사고방식에 치우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부럽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는, 그들의 지식과 여유로움 때문이다.


나도 30년 후에는 저런 모습으로 풍요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들도 다 키우고 생활도 안정적인 것이 부럽다고 하자, 그럼 나이를 바꾸자며 농담을 건네는 센스도 갖고 싶었다. 


그분들의 나이가 되려면 아직 ‘몇 십 년’이나 남았다. 그들처럼 나이듦을 기대하려면, 그 ‘몇 십 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풍요롭게 나이 들고 싶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막연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이거 하나뿐임에는 분명한 것처럼 보이는, ‘배우는 습관’이라는 생각이다. 책 읽고, 글 쓰고, 배우는 데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꼭 사랑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영화 <북클럽>처럼 시니어의 나이에 들어서도 또 다른 장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The Next Chapter is Always the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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