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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Oct 08. 2019

무엇으로 나를 채우고 있는 중일까

음식, 생각, 지식, 노력

건강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럽다.


어떤 증상에 대한 특별한 치료법이 있다 하더라도 개인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을뿐더러, 무엇보다도 치료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약의 효능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좋은 방법을 알게 된다 한들, 무슨 계기가 있어서 결심을 하게 되지 않는 이상, 실천하고 실행하기란 어렵다.


나에게는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특별한 치료법이, 바로 ‘좋은 음식을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키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평균 언저리에 속하는 키였지만, 친한 친구들이 유독 큰 아이들이다 보니 자꾸 비교가 된 탓이었다.


엄마의 욕심은 비교에서 시작된다. 고기를 먹는 것이 키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매일 고기를 먹이기로 결심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잘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였을까. 경미했던 아이의 아토피 증상이 심해졌다. 가려움에 긁느라 아이가 통잠을 자지 못하는 기간이 몇 달이나 이어지자, 엄마인 나의 하루도 피로로 휩싸였다. 한약의 힘을 빌어 아토피를 고치고자 시도해 보았다. 아토피 수치가 낮은 편이었음을 대형 병원 피검사를 통해 몇 년 전 확인을 했던 터였다. 


한약을 먹고 몇 주는 증상이 확연히 나아지는 듯했다. 안심이었다. 그런데 다시 심하게 긁었던 이전으로 증상이 돌아왔다. 속상했다. 계속 이러한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 아이는 내가 비교하는 친구들처럼 키가 커지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마침 그 시기에 <진화의 배신_ 리 골드먼 지음>을 읽었다. 


수십만 년간 진화하며 인류를 지켜 온 유전자들이, 현대에는 오히려 건강에 해를 끼치는 주범이라는 맥락의 책이었다. 도대체 이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계속 곱씹으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던 중, 이 부분을 접했다.


“영양 실조와 굶주림은 인간의 생존을 끊임없이 위협해 왔다. 그러니 우리 몸이 음식-특히 몸에 꼭 필요한 핵심적인 음식-을 원하고, 오염되거나 독이 든 음식은 먹고 병들거나 죽지 않도록 알아서 거부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중략) 결국 우리는 충분한 열량을 섭취해 소화하도록 하는 유전자와, 주기적인 식량 부족에서 살아남아 종을 보존할 수 있게 지방을 넉넉히 저장하도록 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후손인 것이다.” – 89p


흥미진진하면서도 심각하게 읽혔던 중반까지와는 달리, 이 책의 결론은 우리의 행동과 체질을 변화시켜 건강한 삶을 유지하자라는 다소 평범한 결말로 끝나는 느낌이라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아이의 키 고민을 하던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은 스스로 몸에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진화되어 온 유전자의 특성과 맞지 않게, 인위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특정 영양소를 아이에게 먹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고기를 많이 먹이려면, 그에 걸맞게 야채나 과일도 골고루 먹여야 했음이 옳았다. 그런데 나는 고기’만’ 먹였고, 이러한 불균형 식단이 키는 조금이나마 크게 했을지는 몰라도 아이의 몸에 부작용을 낳고 있었다는 생각에 너무 미안해졌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의 욕심을 채우려 했기 때문이라는 죄책감에서도 벗어날 수 없었다. 


건강과 관련된 다른 책도 들춰보며 알게 된 것은, 결론은 시시하게 여겨지지만 그것이 진리라는 것이었다. 좋은 음식을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기. 몸에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진부한 표현에도 이제는 격한 공감이 간다.


여전히 고기는 자주 먹이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아침마다 야채 주스를 마시기 시작한 지 이제 2주가 넘어간다. 긁느라 울퉁불퉁하던 등은 많이 깨끗해졌다. 여전히 밤에 긁기는 하지만, 횟수는 많이 줄었다. 균형 잡힌 영양 식사의 효과를 이렇게 두 눈으로 확인한 만큼, 좋은 음식을 골고루 먹여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겼다.




엄마의 욕심으로 아이도 엄마도 고생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건강에 대해 공부도 하고 반성도 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다행이다. 훗날, 내 건강 문제로 아이에게 고생시키지 않으려면, 좋은 음식 먹기는 아이에게만 적용시킬 것은 아니라는 다짐도 해본다.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되고, 노력하는 대로 살게 되고, 먹는 대로 살게 된다는 진리는 결국 삶을 대하는 자세가 현재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만큼, 나는 무엇으로 나를 채우고 있는 중인지 잠시 고민해 보고자 한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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