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 Ji Youn Feb 26. 2020

숲속의 공주는 잠만 자는 것이 아니었지

’잘 노는 숲속의 공주’를 읽고

핑크색 리본을 머리에 단 표지의 여자 아이를 보며 한껏 들떠서 책을 펼쳐보던 아이는, 책을 마지막 장을 펼치며 한 마디 던졌다.


“이 책에는 공주가 없네.”


공주에 대한 정의는 알 수 없다. 워낙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의 화려한 공주가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현존하는 나이 드신 공주나 왕자의 사진을 보며 실망을 금치 못한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공주도 왕자도 아니라며 혼란스러워한다. 


아이의 시각에서 이 책 속에 공주는 없지만, 엄마의 시각에서 이 책 속에는 분명 야무진 공주가 있다.


숲 속에서 만난, 어지러운 주황색 머리의 친구. 모든 것이 잘 맞는다며 매일매일을 즐거움의 시간으로 채웠던 주인공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공주 드레스를 입고 다른 친구들과 놀고 싶어 졌다. 공주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던 어지러운 주황색 머리의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꿈속에서 재회하게 된 둘은, 주황색 머리 친구가 주인공 아이를 만나러 오기로 약속하면서 잠에서 깬다.


그런데 주인공 아이는 주황색 머리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주황색 머리 친구는 왔었지만, 주인공 아이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모두가 공주 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이들 속에서 주인공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모두가 커다란 핑크색 리본을 달고 있는 아이들 속에서도 주인공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모두가 빛나는 유리 구두를 신고 있었기에 주인공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나를 찾을 수 있어?”라는 질문에, 주황색 머리 친구는 그저 웃으며 꿈속에서 사라졌다.



아이의 표정을 슬쩍 훑어보았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이 책이 어떠한 의도로 만들어졌는가를 분명히 안다. 아쉽게도 그 의도를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아직은 무리가 있다. 


그 또래의 친구들이 공주 드레스를 입고 핑크색에 빠져있는 이유에 대해, 자신을 없애고 그저 어울리기 위해 따라 하기보다는 정말 그것이 예쁘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예쁘다고 어느 정도 주입시키는 탓도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공주 드레스와 핑크색이 ‘유치하다’고 느껴지는 시기가 온다. 그렇게 서서히 어린 시절과 벗어난다.


그런데 한창 공주 드레스와 핑크 물결의 한가운데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스쳐 지나가듯 ‘그림이 예쁘네~’하며 이 책을 몇 번 읽었던 아이들의 마음속 한 켠에는,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용기의 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목소리를 내면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 속에서 확인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내 목소리를 듣지 않고 마냥 주변의 다수를 따라 하다가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친구를 잃었던 주인공 아이가,
어느 순간 지금의 내 모습이구나 라고 느껴지던 순간,
이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가만히 누워 기다리지 말고

한번 생각해 봐!


너를 진짜 공주처럼

빛나게 해주는 게

무엇인지 말이야.”



그리고 빛나는 공주는 아이도 어른도 될 수 있다.


    





#잘노는숲속의공주 #후즈갓마이테일 #whosgotmytail #picturebook #미깡작가 #신타아리바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의 비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