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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Apr 10. 2020

나만 멈춰있었다

시작은 분명 겨울이었는데, 어느덧 옷차림이 가벼워야만 하는 날씨가 찾아왔다.

뒤늦게 겨울 옷들을 정리하고 나니, 집 밖의 풍경은 색깔을 입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바람이 세게 불면 베란다 방충망을 사정없이 내리쳐서 덕지덕지 테이프를 붙여야 했던, 베란다 바로 앞의 앙상한 나뭇가지들에도 언제부터인지 새싹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답답함을 고스란히 감내하며 움츠리고 있는 동안, 자연은 언제나 그랬듯이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 너는 좋겠다.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낼 틈도 없이, 하루 종일 엄마를 외치는 아이의 그림자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두 달이 되는 동안 진득하니 앉아 있어 보지를 못했다. 커피의 카페인 덕분에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고 있던 중이었다. 한 달여 만에 브런치를 들어왔었다.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어서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실수로 브런치 앱을 건드렸을 뿐이었다. 브런치는 다른 SNS를 넘겨보듯 슥슥 넘겨볼 수 있는 채널이 아니기에, 주로 읽어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 후 들어오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들어온 브런치를 접하고는 놀랐다. 브런치에는 여느 때와 비슷하게 많은 생각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잠시 멍했다.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뉴스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유발 하라리의 FT 기고문을 뒤늦게 읽어보았다. 이미 많은 매체에서는 포스트 코로나를 예측하고 논하고 있었다. 


나만 멈춰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겨웠던 하루의 반복이 그리워질 정도로, 분명 일상은 거의 멈췄다. 힘든 상황임에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두껍지도 않은데 오랜 시간 끌고 있던 책을 다시 들었다.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나머지 부분의 서평도 썼다. 운동은 아이가 일어나기 전 조용한 시간에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운동 시간만이 겨우 내 시간이라고 여기고 지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른 아침 시간은 일기 쓰기와 생각의 시간으로 채우고 운동은 아이가 놀 때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하는 중이다.


정해진 길로만 간다고 해도 세상은 어제와 같지 않은데, 고민하고 개척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더 험난할 수밖에 없을 테다. 한데, 그렇다고 멈춰있다면 위기가 지나가도 위기가 지나갔다는 것을 모르게 될까 봐, 남겨진 시간이 회색 빛으로만 여겨질까 봐 더 무서울 것 같았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일단 매일 보고 듣는 것과는 다른 것을 보고 들으려고 의도적으로 해보는 중이다. 그래야 한 군데만 머무르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만 멈춰있어야겠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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