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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Oct 19. 2021

안 그런 척하지만, 자꾸 하고 싶은 "라떼는 말이야"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물어보는 데는 거리낌이 없다. 그다지 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적당한 관심을 표출하기에,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것만큼 무난한 것도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래는 그 누구도 본 적이 없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허무맹랑한 미래를 얘기하면 그저 웃으면 그만이고, 무언가 진지한 미래를 얘기하면 응원의 멘트 한 마디 건네면 그만이다. (물론, 친한 사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미래의 계획을 묻는 것은, 그래서 참 쉽다.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상관없이,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기는 해야 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안갯속에서, 확실하고 싶은 것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읽고 쓰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 변해가고 있는 모습들을 공부하겠다며 펼쳐보는 ‘지금’이 종종 버겁다. ‘현재’를 따라잡기가 이렇게 숨이 찬데, 과연 미래에 발맞춰 나갈 수는 있을까.


이런저런 글들을 읽으며, 다행스럽게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머리로는 대략적으로 알겠다. 그런데 그 트렌드에 발을 담그기에는 왠지 모르게 망설여진다. 모험심으로 똘똘 뭉쳤던 젊음이 지금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아서인지, 어디 가서 어설프게 알고 있는 썰을 풀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경험을 말할 수는 없다. 호기심을 직접 체험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과거를 쳐다보게 된다.

내가 잘 알고 있고, 추억의 시간이며, 확실하게 결론지을 수 있는 시간.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가능성을 높게 사기보다는,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지에 더 의미를 두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이미 성공한 기업들 혹은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과거에 어떠한 과정을 겪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인 것이 당연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으려는 노력보다는 ‘와, 재미있다’ 정도로 그치는 시선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그 재미있는 과거의 무용담만 자꾸 찾아 헤맨다. 


물론, 그렇다고 과거의 시간이 자랑거리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 이불 킥의 비중이 꽤나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과거를 회상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미래는 두렵지만, 과거의 영광은 또렷한 탓일까. 

지나간 시간이 ‘지혜의 시간’이 아닌 ‘무용지물의 시간’이 되어버린, 너무 빨리 변해가는 사회에 대한 반항일까.


자꾸만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겨우겨우 삼킨다. 기성세대로 취급받고 싶지 않은 욕구가 너무 커서, 나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말인 듯 살고 싶다. 


내 마음속에 늘 숨어있는 그 말.

“라떼는 말이야…”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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