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먼저 들어갈게.”
오늘도 낮에 만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가장 먼저 자리를 떴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자니 밥도 먹는둥마는둥 대화도 하는둥마는둥 할 것이 뻔했기에, 아이를 친정집에 맡기고 나온 이유에서였다.
저녁 모임은 말할 것도 없다. 어두운 밤하늘을 쳐다보며 친구와 혹은 남편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로 채워가던 시간들은, 이제는 언제 꺼낼지 모르는 추억 상자 속으로 당분간 안녕이다.
아이가 있는 엄마라면 누구나 그렇다. 엄마에게 밖에 나간다는 것은 ‘외출’이 아닌 ‘대기상태’의 연장이다. ‘외출’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니 ‘집이나 근무지 따위에서 벗어나 잠시 밖으로 나감’이라고 하는데, 엄마는 외출 중에도 무엇인가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다음 스케줄 (대부분 아이와 관련된) 까지 시간이 얼마가 남았는지, 해야할 일은 무엇인지 계속 체크하느라 영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허겁지겁 집으로 복귀하면서, 신고 있던 신발을 길바닥에 떨어뜨리고 올 일도 없다. 백마 탄 왕자가 나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두드리고 다닐 일도 없다. 신발은 절대 벗겨질 리 없이 내 발에 최적화된 지 오래며, 내 인생의 백마 탄 왕자는 이미 만났다.(음.. 진짜다) 시간만 맞춰서 복귀해야 하는, 항상 시간만 신데렐라다.
엄마가 된 후 주로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 반복되는 일상생활을 지내다 보면, 별것 아닌 외출도 예전과는 다르다. 주말이면 아침 일찍 집 근처 커피숍에 앉아 기지개를 켜면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평범했던 일상이, 엄마가 된 후에는 큰 이벤트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운동화만 만지다가 7cm 높이의 구두를 꺼내는 날이면, “이런 신발을 신고 뛰어다닐 때도 있었지” 라며 옛 생각에 잠기다가 곧 설레기도 한다. 이렇듯 큰 의미가 된 외출이 12시만 되면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매번 성급하게 마무리되니, 작은 모임이든 큰 모임이든 항상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아쉬운 것에서 끝나면 더 아쉽다. 신데렐라가 어쩌다 한 번 있던 외출에서 왕자에게 최고의 인상을 남기고 결국 운을 잡았듯이, 엄마 역시 오랜만의 외출이 생긴다면
신데렐라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내가 강렬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모임을 찾는 것은 어떨까.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같은 목표를 가진 엄마들과의 만남을 만들어 보자. 지치지 않게 서로 북돋아주고 때로는 자극도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다면, 자주 할 수 있는 외출이 아닐지라도 강렬한 만남이 될 수 있다. 엄마가 된 후 알게 된 ‘함께 꿈을 꾸는 친구들’이 있다. 작년 한 IT 기업에서 진행한 Campus for Moms라는 프로그램에서 만난 엄마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도 보면서 창업에 대한 교육을 받고 각자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기회를 누렸던 덕분이다. 프로그램 마무리 후에도 거의 1년이 지나도록, '꿈 엄마'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 혹은 이슈가 생기면 한 달에 한 번 만남을 갖고 있다. 짧은 시간의 미팅이지만, 매번 육아로 인해 몇 걸음 뒤쳐져있던 꿈을 다시 앞으로 꺼낼 수 있는 힘을 얻곤 한다.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의미 있는 외출이 될 것이다. 강렬한 인상이란 외모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과 말, 그리고 말 속에 녹아있는 스토리다. 매일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쌓인 스토리를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멋진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스토리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다. 업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나만의 비법이 생겼다던가, 관심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이 늘었다던가, 취미 생활로 시작했던 가죽 공예의 작품이 드디어 완성이 되었다는 것과 같은 그동안의 성장 이야기가 내 스토리가 될 수 있다.
나만의 성장 스토리의 두께가 점점 두꺼워질수록, 나는 항상 만나고 싶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된다면, 다음 만남 때까지 남은 기간 동안 나만의 스토리를 더 쌓기 위해 하루하루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게 될 것은 덤이다.
신데렐라 류의 애니메이션이라면 의례 나오는 마지막 문장, "and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라는 말 이후의 삶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해피엔딩이라고 하니, 해피엔딩이라고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신데렐라의 해피엔딩은 '작은' 해피엔딩이라고 믿는다. 구두도 왕자도 없이 시간에 쫓기는 나이 많은 신데렐라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시간만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신데렐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큰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