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들의 구조조정

by Kim Ji Youn

요 며칠 푹 빠져있던 리빙 잡지를 드디어 덮었다. 사진 위주의 잡지라 읽을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멋진 인테리어 집들을 볼 때마다 다음 페이지로 넘기기가 어려웠다. 만약 사진 속의 아이템들이 우리 집에 생긴다면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까, 이 벽지 색깔이 과연 우리 집에도 어울릴까, 아이에게 이렇게 은은한 색깔의 작은 테이블을 선물한다면 이 상태로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등등 끝도 없이 확장되는 상상 속의 이미지들을 거둬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마치 처음 방문하는 집을 둘러보듯, 우리 집을 훑어보았다.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 구조다.


아쉽지만 즐거운 상상 놀이를 해봤다는 것에 만족하고, 우리 집은 리빙 잡지 속 인테리어와는 반대로 가기로 한다. 미니멀 라이프. 그래, 없애고 넓고 여유롭게 살자. 그리고 고민할 필요도 없이, 없애기 위한 첫 번째 타깃은 아이의 장난감이 되었다.


아이에게 장난감, 특히 인형이 너무 많은 까닭은 실은 나에게 있다. 아이의 인형들 중 반 정도가 내 어린 시절의 인형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초등학교 시절, 아빠에게 선물로 받았던 인형들도 있다. 잘 보관했었기에 20년이 지나도록 흰 털을 유지해온 곰 인형은 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아(?) 크레파스로 알록달록 해졌고, 태엽을 감으면 고개를 돌리며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인형은 아이의 거친 손길을 몇번 겪더니만 이제 고장이 나서 머리가 움직이지도 않는다. 가끔은 구석에 파묻힌 채 몇 주 동안 아이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인형들도 있다. 이번 기회에 이런 인형들을 싹 버려야겠다고 다짐한다.


박스를 준비하고 아이의 인형들 앞에 앉았다. 슈렉에 등장했던 동키, 호랑이, 도널드 덕 등 동물들부터 시작해 커다란 토마토, 하트 모양의 쿠션까지 각양각색의 인형들이 저마다의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첫 번째 심사에 들어간 큰 곰 인형은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은 아이보다 키도 크고 부피도 제법 나간다. 아이가 ‘뻬어’라고 부르는 이 인형은, 하지만 갖고 노는 빈도수가 높지 않다. 버려도 되겠다는 판단하에 곰 인형의 거처를 박스 안으로 옮기려니, 아 맞다. 이 인형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시절, 크리스마스 아침에 머리맡에서 발견했던 그때 그 인형이다. 지금은 전 세계를 누비며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사촌 동생이 유치원에 다닐 때 씨름을 하며 놀았던 그 인형이다. 결혼 전까지, 내가 쳐다보든 존재를 인식하지도 못하든 내 방 한 구석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바로 그 인형이다. 박스에 넣는 일은 잠시 보류하기로 한다.


건치를 대놓고 드러내며 웃고 있는 동키는 아이가 쳐다보지도 않는 인형이다. 미련 없이 박스 안으로 던져버리려니, 맞다. 아직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동생이 혼자 여행을 하던 중 나중에 조카가 갖고 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 왔던 인형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아이가 이 인형을 제대로 갖고 놀기 전까지는, 이렇게 내쳐버리면 안 될 것 같다. 동키, 너도 잠시 여기에 있자.


토마토 모양의 이 인형은 아이가 아주 가끔 베개처럼 머리에 베곤 한다. 진짜 없어도 그만이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생 시절, 친구에게 이 인형을 선물 받을 때 인형에게 이름을 붙여줬다는 것이 문제다. 이 토마토 인형의 이름은 ‘톰토’다. 아무리 찬밥신세라지만 이름까지 있는 인형을 어두운 박스에 넣어 어디론가 보낼 수는 없다.


20개는 족히 넘는 인형들 앞에서 인형들에 얽힌 스토리들을 가만히 떠올리려니, 누가 보면 '저렇게 오랫동안 뭘 하나' 라며 한심하게 보이겠지만 마음이 매우 심란하다. 버릴 것이 없다. 우리 집의 인형들이 마치 토이스토리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안쓰럽다.


나와 공통된 히스토리가 조금만 엮여있어도 이렇게 작은 물건조차 버리기 어려운데, 사람을 정리하는 것은 얼마나 매정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시에, 이 나이가 되도록 인형 따위(?)에 얽힌 추억들에 몇십 분이고 같은 자세로 앉아있는 내 모습이 창피하다.


하지만 어쩌랴. 창피한 이 모습 또한 나인 것을. 박스로 갈 인형들과 ‘살아남을’ 인형들을 구분하는 것부터 진도가 나가질 않는데, 만약 독한 마음을 품고 진짜 버린다고 한 들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이 찜찜할 것이 뻔하다.


그냥 이 감정을 창피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아이와의 감성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장점이라고 여기고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인형의 구조조정 작업은 훗날의 아이에게 미루기로 한다.


그때까지 우리 집 거실의 미니멀 라이프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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