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키즈 엄마의 대화법

by Kim Ji Youn

약속이 없는 날, 게다가 문화 센터 프로그램 같은 아이의 외출 활동조차 없는 날이면 그야말로 위기의 날이다. 하루 종일 어른다운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하는 말이라면 모조리 따라 하려 애쓰고, 알아가는 단어가 제법 늘어나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가 신기하지만, 그래 봤자 세 살배기 아이다.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는 순간부터 집에는 하루 종일 동요가 백그라운드로 흘러나와야 한다. TV는 말할 것도 없다. 아이에게 가능한 노출시키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말하고 싶다.


여자는 하루 평균 2만 단어 가까이 말한다고 하는데, 난 2만은 커녕 1만 단어도 못 채울 것 같다. 만보기처럼 말을 할 때마다 단어를 세어주는 기계가 있다면, 진지하게 한 번 체크해 보고 싶다.


정말, 말하고 싶다.


그래서 찾은 아이템이 라디오다. 10년도 훌쩍 넘게 잊고 있던 라디오를 다시 만난 것이다. 물론, 주파수를 맞추는 그 시절의 라디오는 아니다. 라디오 앱이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아직까지 라디오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낮 시간 동안 어른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 이 집에서 나오는 어른 목소리는 나와 라디오뿐이니 말이다.


라디오를 듣는 일도 쉽지는 않다. 아이에게는, 광고도 나오고 어른 노래도 나오는 라디오 소리보다는 오로지 동요다. 이렇게 되다 보니, 아이의 상황을 봐가며 식탁 위의 핸드폰 라디오 앱을 켰다 껐다를 반복한다. 라디오가 뭐길래 이렇게 숨바꼭질하면서 듣나 싶겠지만, 오히려 라디오를 처음 듣던 시절이 떠올라 즐겁다.


초등학교 6학년 즈음이었을까. 라디오 속의 DJ와 게스트들의 깔깔대는 대화나 가요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나도 라디오의 한 구성원이 된 느낌이었다. 늦게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깨어있다 보면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어서 자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자는 척하며 이어폰을 꽂고 침대에 누워 늦게까지 밤을 지새운 날들의 기억은 지금도 추억이다.


물론, 라디오를 향한 순애보는 일방적이다. 사연을 보내거나 돌발 퀴즈에 바로 답변을 날려도 읽어줄 리 만무하다는 것도 안다. 때문에 라디오와의 어색한 대화가 시작된다. 대부분의 청취자들이 댓글을 남기며 한 마디씩 참견한다면, 나는 누가 듣던 말던 실제로 한 마디 거든다. 소리 내어 함께 웃는다. DJ가 답을 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질문을 던진다. 주고받음이 전혀 없는 일방적인 대화라지만, 이렇게 말도 안되는 대화를 하고 있노라면 잠시라도 밖에서 어울리다 돌아온 기분이 들어 위로가 된다.


재미있는 것은, 라디오와의 대화법을 아이와의 대화에도 슬슬 적용시켜본다는 것이다. 아이는 내가 하는 말에 제대로 반응해줄 수 없을 뿐더러, 나 역시 아이에게 적절한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라디오와 같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씩 던지고, 몇 차례 반복되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내가 웃음보를 터트리면 아이 역시 함께 소리 내어 웃는다. 아이가 답을 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질문을 던진다. 또 그렇게 아이도 알 수 없는 대꾸를 시작한다.


아이와의 이런 대화는 곧 마무리가 될 것이다. 세상을 알아가는 속도 만큼이나 말 역시 빨리 늘어날테니 말이다. 이 시간이 못내 아쉽기도 하지만, 라디오와의 일방적인 대화가 아닌 아이와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아이와 함께 웃고, 떠들고, 질문하고, 음악도 듣고 싶다. 광고처럼 중간중간 방해하는 요소들이 생기겠지만, 언제나 광고는 잠시일 뿐 기분좋은 대화는 다시 이어지기 마련이니까.


라디오 키즈 엄마는 그렇게 라디오와의 즐거운 이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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