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맛있게 먹고 싶다

by Kim Ji Youn

귀찮았다. 나 스스로를 위해 음식을 차리는 것이 말이다. 내가 요리를 해야 할 의무도 없었다. 엄마가 '당연하게' 해 주시는 음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투정’ 한 스푼 추가 뿐이었다.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을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안 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결혼 후에야, 누군가가 부엌에 가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집안일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과정에서 남편과 나, 둘 중 누가 부엌에 들어갈 것인가를 두고 벌인 몇 차례의 설전 끝에, 부엌은 내 담당이 되었다. 하지만 불안하게도 난 정말 요리에 소질이 없었다. 리조또 한 접시를 만드는데 너무 많은 그릇이 필요했으며, 신혼집 답게 아담했던 부엌과 싱크대는 결과물이 나오려면 한참 남았음에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예쁜 접시에 담긴 음식을 보고 비쥬얼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한 입씩 입으로 넣고 나면 우리의 대화는 곧바로 음식이 아닌 다른 주제로 옮겨가곤 했다.


한번은 참다 못한 남편이 김치꽁치 찌개와 갈비찜을 만들었다.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남편의 음식을 맛 본 후 깨달았다. 남편이 했어도 나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난 정말 요리에 소질이 없다는 사실만 재확인했다. 난 항상 남편보다 많은 재료와 지저분한 주방과 많은 접시와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남편은 과정도 짧았고 맛도 나와는 천지차이였다. 이후 우리의 엥겔 지수는 엄청나게 높아졌다. 밖에 나와야만 맛있게 먹었다.


사랑하는 아이가 생기자 식습관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우선, 밖에 나가서 먹기가 어려워졌다.


육아 초반,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래 가사에 100% 공감이 갔다. 밤낮없이 2시간 마다 한 번씩 일어나야 했지만, 아이가 젖병을 싹 비워내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이미 피로가 가심은 물론이요, 입이 귀까지 걸리곤 했으니 말이다. 먹을 것이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면 나는 이미 배가 불렀다.


'이유식’의 시대로 진입하자 상황이 더 달라졌다. 밖에 나가서 먹기도 어려울 뿐더러, 내가 움직여야만 먹을 수 있게 되었다.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건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매 끼니를 준비하면서 아이의 것과 내 것을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어른 반찬 하나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아이의 이유식에 무엇을 넣어줘야할지, 어제와는 겹치지 않는지, 간은 얼마나 약하게 조율해야 할지 매 번 고민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기껏 만들었는데 잘 먹지 않는 날에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득도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스스로에게 결심을 하게 된 것이 있었다.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의 어머님이 되지 말자는 것.


아이를 돌보는 일과 더불어 매 끼니마다 2인분의 음식을 별도로 준비하자니, 자연스레 ‘체력’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선 내가 살고 볼 일이었다. 내가 건강해야 아이를 돌볼 수 있을 것 아닌가.


아이를 챙기는 것 만큼 나의 건강 관리를 상위권에 배치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 건강을 챙기기 위한 첫 번째 실행 방법으로 먹고 싶은 것을 먹기로 했다. 아이의 반찬을 같이 먹거나, 아이가 남긴 반찬으로 식사를 대신하기에는 스스로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하지만 ‘결심’이라는 것이 '평소 실행하기 어려웠으나, 이렇게라도 한 번 경종을 울리지 않으면 결코 개선될 것 같지 않아서 밖으로 공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결심도 실행도 모두 어렵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밥을 다 먹고 난 후에도 아이가 남긴 반찬들이 아까워 꾸역꾸역 먹고 있노라면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것 같다. 그렇다고 아이가 남긴 반찬들을 버리기에는 만감이 교차한다. 직장인 시절, 가벼운 마음으로 핸드폰과 지갑을 갖고 나와 점심을 먹을 때면 너무나도 쉽게 밥을 남겼고, 남긴 식사량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만든 음식들이 남겨진 모습을 보면 내가 쏟아부었던 시간이 함께 버려진 것 같고, 이렇게 작은 것들이 쌓여 낭비되는 것이 얼마나 커질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월화수목금을 겨우 보내고 나면, 주말에는 어떻게든 외식이 필요하다. 거창한 외식이 아니다. 이탈리안, 중식, 일식 이런 것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저 여러가지 반찬과 국, 찌개가 있는 한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쫓기지 않는 시간적 여유.


한 끼 식사가 이렇게 어려운 것일 줄이야.


아이가 어린 탓이 큰데, 그렇다고 아이가 빨리 크는 건 뭔가가 아쉽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단지, 나도 맛있게 먹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먹는 즐거움을 느끼려면 방법은 하나 뿐이다.


나도 엄마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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