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책상

by Kim Ji Youn

방에는 항상 장롱, 침대 그리고 책상이 있었다. 분위기를 바꾸고 싶거나 인테리어를 달리 한다 하더라도, 장롱, 침대 그리고 책상은 언제나 필수였다.


학창 시절,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 할 곳은 책상이었다. 모범생이 아닌 들, 책상에서 공부만 하던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대학 입학 준비를 앞둔 시기에는 책상에서 오직 입시만을 생각했지만, 그 이외에는 대체로 책상에서 쓸데없는 행동을 많이 했다. 그 쓸데없는 행동은 대부분 공부하는 척하며 숨어서 했던 일들이다.


가령, 형형색색의 펜을 번갈아 잡아가며 긴 편지를 쓰기도 했고, 시험 기간임에도 소설책을 읽곤 했다. 소설책은 언제든지 읽을 기회가 많은데, 이상하게도 유독 시험 기간에 읽고 싶어 지곤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시에는 어른들의 잡지라고 여겨졌던, 현재는 폐간된 영화잡지를 구입해서 몰래 읽기도 했다. 문제집을 펴고 펜은 들었지만, 라디오에만 집중하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가끔은 상상 속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현실보다는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일들이 훨씬 재미있었다.


울기도 했다. 친구와 문제가 생겼을 때도 속상한 마음을 달랬던 자리는 다른 곳이 아닌 책상 앞이었다. 잠도 잘 잤다. 사실, 책상에 엎드려 잠자던 시간의 비중이 상당히 컸던 것 같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잠의 유혹은 점점 더 집요해졌기에 고개가 꺾이기도 했고, 볼에 찰싹 달라붙은 종이를 떼어내기 민망한 순간을 여러 번 겪기도 했다.

책상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작업들이 진행되었다. 부모님은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뿌듯해하셨을 테지만,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공부한 시간이 많지 않다.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책상은 꼭 있어야 했다. 책상은 이렇듯 마치 방 안의 또 다른 작은 방이었다.


그러던 책상이 사라졌다.


책상이 없는 일상이 익숙해졌다고 느끼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출퇴근을 하던 시절에는, 집에 있던 책상의 존재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야근하고 회식하고 친구들을 만나느라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조용히 책상에 앉아서 딴생각을 하고 있을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집이 아니더라도, 직장에서 항상 책상 앞에 앉아 있지 않았던가.


시간이 흘러 엄마가 되었고, 육아의 책임자가 되면서 머릿속에 중요하게 자리 잡은 단어는 ‘효율성’이었다. 아이를 위해 집안의 위험 요소들을 제거해야 했고, 마침 미니멀 라이프라는 트렌드와 성향이 맞았고, 집을 넓게 쓰기 위해 가구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고자 했을 때, 많은 것을 없애기로 했다. 그리고 버리기로 결심한 첫 번째 가구가 책상이었다. 나의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칸막이를 치지 않고도 내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가구를 내 손으로 버린 것이다.


시작은 이랬다. 효율성을 따져 보았을 때, 책상은 다분히 비효율적인 가구였다. 간이 테이블이나 식탁 등 그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가구들이 여럿 있는데, 굳이 작지 않은 자리를 차지해가며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확신했었다. 게다가 어수선해져 있는 책상을 자주 보노라면, 청소의 압박 또한 큰 스트레스였다.


홀가분했다. 집도 깔끔해졌다. 아이가 책상 밑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머리를 다칠 위험도 사라졌다. 식사 시간 외에는 잘 앉지 않았던 식탁을 자주 사용하게 되자, 비용 대비 효율성을 높인 ‘올바른’ 식탁 사용법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하지만, 어쨌든 식탁은 책상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나만의 방도 나만의 공간도 아니었다. 책상이 있었다면 올려져 있을 법한 물건들은 항상 옮겨 다녀야 했다. 일기장도, 스크랩 북도, 노트북도 모두 자기만의 자리가 없이 떠돌아다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만의 공간을 만나기 어려운 날도 자주 생겼다. 언제나 듬직하게 서서 기다리고 있는 자리가 아니다 보니, 이런저런 핑계로 한쪽에 모아 두었던 ‘책상 아이템’을 꺼내와서 식탁에 펼쳐 놓는 작업이 귀찮을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공부를 위해 아이의 책상을 구입하고, 남편의 서재를 꾸며준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엄마 자신을 위한 책상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름을 들었을 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알 정도로 유명한 워킹맘 혹은 유명인사가 아닌 다음에야 말이다. 가끔 엄마들의 커뮤니티에서 ‘저만의 공간이 생겼어요’, ‘작업실을 만들었어요’, ‘베란다에 조그만 책상을 들였어요’라는 내용의 글들을 만날 때면, 괜히 마음이 짠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상에 앉아 있어야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는데, 그 공간이 없기 때문에 더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를 기관에 혹은 학교에 보내 놓고는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 찾게 되는 공간도, 아이가 엄마보다 친구들을 더 찾게 될 때의 헛헛함을 이겨낼 수 있는 공간도 모두 책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책상을 그리워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식탁 신세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손 옆에는 책이나 노트가 아닌 티스푼들과 냅킨이 있고, 오래 앉아있기에는 버거울 정도로 의자는 딱딱하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또 노트북과 마우스, 책들을 높게 쌓아 책장이나 피아노 위에 올려두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하루에 적어도 30분이라도 내 공간 앞에 앉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것이다. 번거롭더라도 이제는 쌓아둔 물건들을 매일 식탁으로 옮겨 올 준비가 되어있다.


멋진 책상이 아니더라도, 식탁에서 공상의 시간이든 꿈을 현실화하는 시간이든 나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어 좋다. 감사하다. 그리고, 다시 나만의 책상을 확보해 보겠다는 야무진 계획도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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