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시간 여행

by Kim Ji Youn

“부모가 되어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나의 세대뿐만 아니라 아이의 세대 역시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이지.”


결혼을 하고도 몇 년이 지나도록 부모가 되기를, 아니 엄마가 되기를 주저했던 나에게 한 선배가 해주었던 말이다. 아이를 낳으라는 강요가 섞인 말은 아니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막연히 부담을 갖거나 그저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당시에는, “너는 왜 아이를 안 낳니?”라는 류의 간섭 중 하나로 치부해 버렸다. 어찌 보면 일부러 안 낳은 것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 체념의 상태였다. 워킹맘의 애환을 담은 에피소드들은, 이 상황을 합리화시켜줄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계속 이렇게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계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그리고 일주일이 넘어가는 이번 황금연휴를 아이와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엄마가 되었다.


긴 휴일임에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미세먼지만 야속할 뿐이다. 밖으로 나가야 조금이나마 어른 행동을 할 수 있을 텐데, 아이와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 나도 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 갑자기 읊어대는 ‘로보카 폴리’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맞받아쳐줘야 한다. 즐겨보는 만화 캐릭터 친구로 변신해서 대화도 해줘야 한다. 참, 변신하려면 일어나서 한 바퀴 돌아줘야 한다. 나는 노란색 크레파스를 좋아해야만 한다. 검정 크레파스는 늘 불쌍한 역할이다. 최근에 도서관에서 빌려 본 ‘까만 크레파스’라는 책에 많은 감정 이입을 했던 탓이다. 흥이 넘쳐나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가사를 붙여서 큰 소리로 흥얼거린다. 이때, 가사를 올바르게 고쳐주는 행동은 금물이다. 오히려 나도 똑같이 흥얼거려줘야, 아이와의 시간이 평화롭게 흘러간다.


남편과 나를 적절히 닮은 아이와 무엇인가를 주고받는 과정은 매우 단순하고 가끔은 귀찮기도 하지만, 때로는 신기하고 경이롭다. 아이의 얼굴에는 남편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고, 아이의 고집스러운 행동에는 나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리고 선배의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1.5명의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나 한 사람의 삶을 살고 있기에 1명의 인생을 살고 있다. 추가로, 아이를 통해 지금 아이 세대의 고민을 같이하고 다시 한번 나의 과거를 걸어가고 있으므로 0.5명의 인생을 덤으로 살고 있다.


아이를 통해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고 생각하기에는, 물론, 나의 그 시절과 아이의 지금은 공통분모가 같지 않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미세먼지가 없었고, 늘 뛰어다녔다. 내가 알던 만화 캐릭터는 지금은 찾기 어렵다. 다양해진 애니메이션 종류를 다 외우고 애정을 주는 요즘 아이들이 훨씬 똑똑한 것 같다. 게다가 본인도 모르게 듣게 되는 영어 동요들을 흡수하느라, 나의 어린 시절보다 지금 아이들의 머리가 몇 배는 복잡하게 돌아갈 것 같다.


그럼에도 아이와의 놀이 시간 내내, 나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이렇다. 구체적인 상황은 다를지라도, 지금 이 순간 아이의 마음은 그 당시의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를 닮았기에 더욱 그럴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아이가 현재 어떤 마음인지 표정에서 다 읽히지만 귀찮은 마음에 모른 척하며 행동에 제약을 걸 때면, 당시 같은 상황이었을 때 상처받았던 작은 내가 다가온다. 정신을 차리며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말은, 어린 나에게 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아이가 위로받으면, 어린 나 역시 위로받는다.


아이를 관찰하며 더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자꾸 내 어린 시절 비디오를 재생시켜본다. 한창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 내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보이는 부모의 태도가 원망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리며 나의 아이에게만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내가 지금까지 품고 있는 따뜻한 행복을 똑같이 아이에게 물려줄 방법을 찾느라 고심한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일들은 무엇이었는지. 왜 그 이벤트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는지. 나의 경험을 돌이켜 볼 때, 나의 생각지도 못한 행동이 아이에게 의도치 않은 영향을 끼칠 일은 없을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들수록, 나의 과거와 현재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자꾸 나의 시간을 거꾸로 향하는 여행을 해야 하고, 반대로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이 아이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는 같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더 이상 길 수 없을 것 같은 이번 연휴. 아이와 유독 많은 시간을 같이하고 부딪히며, 역시나 유독 많은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


오늘은 너의 날이지만, 감사하게도 어린 나의 날이기도 하다.

너의 어린이날을 축하하고, 나에게도 이런 시간 여행을 허락한 지금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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