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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Mar 18. 2017

서로 다른 우리의 시계

함께 쓰고 있는 시간인데, 참 다르다.

같은 속도로 돌아가는 시계를 쓰고 있는데,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나이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고들 한다. 어릴 때는 느릿느릿 지나가는 시간 탓에 빨리 어른이 되지 못해 불만이었는데,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은 계절이 어쩜 이렇게 쉽게 바뀌는지 아찔하기까지 하다. 


연애의 시간도 나이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연애보다 조금 더 연륜이 생겼을 때의 연애 시간이 훨씬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연애 기간 대비 일찍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남자와 여자의 수다 시간도 체감의 차이가 심하다. 친구들과 만나 이제 막 이야기의 꽃을 펼치려고 할 때면, 어김없이 집에 언제 들어오느냐는 남편의 문자가 도착한다.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나. 그 시간 동안 한 군데에서 같은 음식을 펼쳐 두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끝도 없이 하는지 궁금하다며 말이다.


TV나 핸드폰 영상 앞에서는 손에 절대로 잡히지 않을 속도로 시계 바늘이 쌩쌩 돌아가지만, 뭔가 공부를 하려고 앉은 책상 앞에서는 오히려 내 손안에 갇혀 있으려는 마냥 시계 바늘도 느릿느릿 움직인다.


집에서의 시간과 밖에서의 시간도 다른 시계로 움직인다.


그랬다.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에 요령이 생겨 시간이 절약될 줄 알았지만, 그러기는커녕 다른 일들이 계속 생겨났다. 엄마 역할이 처음이라 불안한 것인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매번 다른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대응하기란,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이다. 육아란 평생 능숙해질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면,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 스킬과 연륜이 쌓여가는 사람들에게는, ‘효율성’이라는 무게가 더해져 그만큼 시간이 스펙이 되어간다고 생각되었다. 부러웠다.


아이와 함께 있어주는 덕분에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고 말해주는 남편이 있지만, 가끔은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집 안의 시계와 집 밖의 시계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밖으로 발자국을 내딛게 될 때가 오면, 집에 걸려 있던 시계와 밖의 시계와의 차이를 감당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고생하게 될까 봐 걱정이다. 아이의 세계에서 살다가 어른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려면, 거쳐야 할 테스트도 많을 것이다. 마치 연배가 어느 정도 있는 분들이라면 의례 IT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귀찮아하듯, ‘발 빠르게 움직이는 트렌드에 어눌하게 대응하는 아줌마’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은 나를 귀찮아하는 많은 편견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안타깝다. 다른 시간 속에서 충실하게 보낸 것뿐인데, 틀렸다고 평가받아야 하는 상황이 말이다.


일상의 기준은 대체적으로 집 밖의 시간이다. 집 안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건, ‘기준’이라는 시각에서 보았을 때는 중요하지 않은 일을 했을 뿐이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매일 반복되지만 손을 놓아버리면 안 되는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다. 다만, 남들이 몰라주니 스스로도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 문제다. 주변 사람들의 한 마디에 내 기분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데, 한 두 명도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집안일을 낮게 평가한다면 내 자존감도 함께 낮아지기 쉽다. 이렇게 집 밖의 시간이 집 안의 시간보다 점점 더 중요해진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라면, 맞다고 스스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맞는 것은 무엇이고 아닌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결정하는 기준은 옳은 기준일까. 만약, 맞고 아님을 구분 짓는 기준이 틀렸다면, 틀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 기준에 따라 받게 되는 평가를 그대로 수긍할 수 있을까. 집 안에서의 시간도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고자 할수록 복잡하기만 하다. 가끔은 ‘집에서도 바쁘게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어요’라고 왜 굳이 설명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지, 틀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쪽의 시간에만 너무 오래 머물러 있기에, 상대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반대로, 너무 쉽게 움츠러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집의 시계와 밖의 시계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간격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두 곳의 시간을 자주 이동하며 지낸다고 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당장은 쉽지 않을 테다. 그 대신, 집 안의 시간에 좀 더 자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집 안의 시간 속에 있다는 것에 대해 당당하게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소에 작게라도, 집 안의 시계와 집 밖의 시계의 차이를 줄여보는 연습을 스스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언제든지 밖에 나가도 당황하지 않고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엄마 연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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