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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Aug 18. 2017

말할 수 있는 사람

너의 삶에 도움이 되고 싶은 엄마의 편지 

“존슨 씨는 수많은 책들에서 읽은 천국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해. 그의 책 속에서 그건 언제나 완벽한 장소인 것 같아. 하지만 완벽한 장소라는 건 사람마다 각기 다른가 봐. 난 이해가 잘 안 돼. 하지만 존슨 씨는 아주 ‘복잡한’ 사람이야. 아, 이것은 새로 배운 단어야! 핸더슨 선생님은 천국이 완벽한 장소라고도 하고, 마음의 상태라고도 해. 그게 무슨 뜻인지 난 하나도 모르겠어. 밖에서 앉아 소의 등을 쓰다듬는 것도 천국이 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둘 다 될 수 있을 거라고 했어. 사실, 존슨 씨는 ‘절대적으로 될 수 있다’고 했어”

– 버지 윌슨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

 

참 말이 많은 아이다, 빨강머리 앤은.


어렸을 적 TV에서 접했던 빨강머리 앤은 정말이지 시끄러울 정도로 말이 많고, 책상에 격하게 엎드려 눈물도 자주 쏟고, 공상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상한 아이였다. 그런데, 엄마는 그 아이가 좋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부러웠다. 그 이상한 아이는 내가 ‘안 하는 것’이 아닌, ‘못 하는 것’ 을 거리낌 없이 하는 아이였으니 말이다. 


빨강머리 앤은 커서 선생님이 된단다. 빨강머리 앤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앤의 어른이 된 모습을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대개 빨강머리 앤을 ‘아이’로 기억하는 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앤의 성격이 어린 시절에만 가능한 특징이라고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엄마가 생각하는 앤의 성격은 이렇다. 말이 많다는 것, 질문을 한다는 것, 그리고 생각이 많다는 것. 지금 너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것들은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이지만, 신기하게도 어른이 되어가면 갈수록 이상한 행동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단다. 


말이 많고, 질문을 하고, 생각이 많은 것은 나를 성장시키는 요소이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고 책임을 져야 하는 사회 속으로 진입하게 되면 불편한 요소가 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었다. 남들은 그냥 넘어가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면 적응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오인받는 경우를 보았고, 질문을 받게 될까 몸을 움츠리는 상황도 많이 보았다. 소소한 개똥철학에도 쓸데없는 생각만 많은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말이 많으면 진중하지 못 한 사람이 되었다. (아, 여기서 말하는 ‘말이 많다’는 상대방의 험담을 즐기는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행동은 정말이지 내 정신만 갉아먹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특별하게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엄마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점점 말을 줄이려 노력하고, 궁금해하지 않으려 애쓰고, 생각은 접으려다 보니 어른이 되면 마음이 힘들어 지나보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니, 상대방의 의중을 알 수 없다. 추측으로 행동하게 되니, 오해와 실수가 생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하니, 다른 사람의 의견을 내 의견인 마냥 따르는 것이 편하다. 먼저 의견을 내고 책임지기보다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때문에, 어른이 되면 ‘커뮤니케이션’이 화두가 되는 것 같다. 


요즘 유독 ‘빨강머리 앤’ 을 소재로 다룬 책들이 많이 눈에 띈단다. 어른이 된 지금, 이 사회에서 빨강머리 앤을 찾는 이유는 우리가 말을 숨기고 말을 감추기에, 그리고 말을 안 하기에 생기는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엄마는 네가 말할 수 있는 사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저 입만 움직이는 말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단어를 배운 즐거움을 나누는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더라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밖에서 앉아 소의 등을 쓰다듬는 것도 천국이 될 수 있냐’는 엉뚱한 질문도 당당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누군가가 던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절대적으로 될 수 있다’고 성의 있고 진지하게 대답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엄마도 하기 어렵다. 결국 내가 못 한 것을 너라도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러한 바람을 전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장 너와의 시간 중에서도 이러한 말이 오고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엄마와의 연습을 통해, 네가 말하는 것을 즐겼으면 좋겠다. 

빨강머리 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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