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 Ji Youn Apr 05. 2018

누구나 다른 마음

감정의 존중

판단이나 선택을 강요받을 때가 있다.  


직장에서라면 상사의 의견을 따라야만 할 때도 있고, 가족 간 혹은 친구 사이에서 내 생각을 양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원활한 관계 유지나 원활한 업무 진행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사실 ‘원활하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당사자인 내 마음은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결과라 한 들, 타의에 떠밀려 선택한 절반의 자발적 선택일 뿐이다. 


물건을 살 때도, 정말 원하는 것보다 통장 잔고 상황에 맞는 판단을 한다. 옆자리 동료 스타일의 옷을 입어보고 싶지만, 왠지 따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잠시 유보하기로 한다.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마음속에 묻어둔다. 생크림 가득 올려진 라테를 마시고 싶지만, 체중계 숫자를 다시 떠올리며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손가락만큼 크고 기다란 귀걸이를 하고 싶지만, 나이를 떠올리며 다시 서랍장에 넣는다. 


내 결정에 의해 행동한다고는 하지만, 무의식적인 제지를 받고 스스로를 억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하루를 살아간다. 이때, ‘예술’이라는 신세계가 우리 삶에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감사한 일이다. 예술은 감정을 마음대로 표출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영역이니 말이다.  


모든 예술 분야가 그러하듯, 음악에도 정답은 없다. 악보라는 기본 틀이 있지만, 악보는 가이드의 역할을 할 뿐이다.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행하는지는 연주자의 마음에 달렸다. 하나의 멜로디에 빠른 템포를 입힐지 느린 템포를 입힐지, 어떤 장르의 분위기를 적용할지, 경쾌한 분위기로 이끌고 갈지 반대로 갈지 등은 모두 연주자의 결정이다. 아쉽게도, 모두가 연주자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때문에 작품을 생산해내는 역할과는 반대로 ‘감상’이라는 역할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행운이다. 감상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필요 없으니 말이다. 


감상의 시간은 전적으로 내 마음에 달렸다. 누구나 다른 마음을 갖고 있음을 인정받고 내 감정을 존중받을 수 있는, 어찌 보면 유일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슬픔, 기쁨, 즐거움, 걱정 등 다양한 느낌에 꼬리를 물고 펼쳐지는 상상도, 누구의 간섭을 받을 필요도 받을 수도 없는 나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감상의 감정에는 평가가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혹은 걷는 순간에도 무엇인가를 보고 읽고 듣고자 하는 것은,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참을성 없는 요즘 사람들의 세태라기보다는, 그 짬을 통해서라도 내 감정을 느끼고 웃고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의도적으로 감상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눈과 귀와 마음을 집중하고, 감상의 순간 느끼는 감정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탑승한다. 내 감정을 소중히 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거진의 이전글 감칠맛 나는 끼어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