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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Jan 29. 2018

감칠맛 나는 끼어들기

온음과 반음

88개나 되는 건반을 갖고 있는 피아노는 정말이지 다양한 음역대의 소리를 낸다. 반면, 건반 색깔은 흰색과 검은색 이렇게 두 개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가 너무나도 극명해서인지 색깔의 차이가 소리의 차이까지 만들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음계에 따라 '도'라는 첫 음은 흰색과 검은색 어디에서나 시작할 수 있지만, 피아노 가장 한가운데의 흰색 건반을 첫 시작인 '도'로 배우는 입문자의 입장에서 검은색 건반은 어려웠다. 흰색 건반보다 길이도 짧았고 무엇보다 흰색 건반 대비 숫자도 많지 않았기에, 초반에는 검은색 건반을 건드릴 일도 없었고 건드려서도 안 될 것만 같았다. 피아니스트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흰색 건반과 검은색 건반을 순식간에 오고 가며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만질 수 있는 건반이 바로 검은색 건반이라고 여겨졌다.


흰색 건반으로 도, 레를 두드리다 호기심에 검은색 건반을 건드려볼 때면, 갑자기 반음의 소리가 들리면서 지금까지의 흐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나 만지지 않는 것이 좋겠다, 게다가 색깔도 검은색인 이 건반들은 정말 ‘이상하구나’.


‘이상하다’는 표현을 어떻게 써야하는 것인지 간혹 헷갈린다. 이상하다는 표현을 생각보다 자주 쓰는 것 같기는 한데, 그 정의를 내리는 것이 모호하다.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이상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나와 다르면 이상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다른 것과 어울리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는 아무 생각이 없지만 많은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나 역시 그 흐름에 따라 이상하다고 여겨야 하는 것인지. 사실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텐데, 종종 다름을 이상하다고 낮게 평가해 버리고 만다. 


검은색 건반도 마찬가지다. 검은색 건반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흰색 건반과 다른 것일 뿐이었다. 검은색 건반으로도 단조가 아닌 장조의 음계를 낼 수 있다. 검은색 건반으로도 ‘도’를 연주할 수 있다. 음계의 시작인 ‘도’는 흰색 건반에서만 시작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과 온음으로만 연주되는 장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이유 때문에 자연스럽게도 검은색 건반을 ‘이상하다’라고 정의 내리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온음으로만 진행되는 인생은 재미가 없다. 게다가 인생이 온음으로만 진행될 수도 없다.


평온한 마음 상태로만 살 수 있다면 일상이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마음이 평온하다는 것은 변화가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장르와는 다른 장르의 책이나 영화를 처음 접한다거나, 기존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색의 립스틱을 시도해 보았다거나 혹은 예상치도 못한 나의 재능을 발견했다 등의 이슈들이 잔잔하고 평온한 호수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고, 손톱 만한 돌멩이 하나라고 해도 호수에 파장을 남기게 마련이다. 이랬으면 좋겠다라며 가끔씩 상상하는 그런 작은 일탈들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이런 작은 변화 없이 평온하기만 한 마음 상태가 진짜 행복한 것일까. 우리는 늘 꿈을 꾸고 있지 않은가. 영화 속 드라마틱한 해피 엔딩이 내 삶에서도 현실이 되길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삶에는 온음이 아닌 다른 것도 꼭 필요하다. 반음 말이다.


온음 사이에서 반음은 어떻게 끼어들고 있을까.


악보의 가이드에 의해 누르기도 하고, 즉흥 연주 중 의도적으로 누르기도 하고, 실수로 건드리기도 한다. 누군가가 제시한 길을 통해서, 내가 의도적으로 이슈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이유에서 혹은 정말 의도치 않은 실수에 의해서 반음은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끼어든 반음이 때로는 즐겁기도 하고 때로는 벗어나고 싶은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피아노에는 88개나 되는 건반이 있다. 건반을 두드릴 수 있는 손가락은 더 다행히도 왼손 오른손 합쳐 무려 10개나 된다. 더욱더 다행히도, 검은색 건반은 흰색 건반보다 훨씬 적다. 모두 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끼어든 반음이 감칠맛 나는 삶의 양념이 될지 아니면 앞으로 계속 이어질 우울함의 시작이 될지는 그다음 손가락에 달렸다. 듣기 좋은 화음으로 만들어갈지 불협화음으로 만들어갈지는 모두 손가락을 움직이는 내 의지에 달렸다는 뜻이다. 


사실, 반음이 하나 정도 섞여있는 7화음이 훨씬 풍부하고 듣기에도 좋다. 지금의 음정 다음으로 누를 건반, 어떤 건반을 누를 것인지 정했다면 웃으면서 누를 수 있는 건반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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