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까지 나의 힐링 여정에 대해 썼지만,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을 때 마음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다.
아래는 지난 3주간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다.
1. 자동차 번호판을 도난당했다. 어느 날 의식하니 뒷번호판이 다른 번호로 바뀌어있었다. 경찰을 부르고 도난 신고를 하고 보험, 통행증, 주차증 등 모든 차 번호 관련 정보를 업데이트해야 했다.
2. 환풍기 일체형 전자레인지가 고장 났다. 얼마 전부터 자꾸 멈추더니 어느 날부터 아예 켜지질 않는다. 나는 가스레인지를 켤 때 항상 환풍기를 켜는데 소리로 레인지가 켜져 있음을 상기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고장 이후 환풍기를 켜지 않고 요리를 하다 깜빡하고 레인지를 끄지 않아 불이 날 뻔한 아찔한 경험을 하고 바로 전자레인지를 주문했다. 나 혼자 설치하기엔 너무 무거울 것 같아 설치 서비스를 신청했더니 기존 전자레인지가 이미 제거되어 있어야만 한단다. 이럴 거면 그냥 핸디맨을 불렀지..
3. 주민 대표가 화재 경보 점검일을 정하고는 나를 메일링 리스트에 넣지 않아 점검일 날 내가 집을 비운 상태였다. 그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당장 집에 오거나 도어록 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면 나에게 추가 점검 비용 (비싸다)을 물게 하겠다 했다. 내가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해도 그럴 리 없다며 짜증을 냈다. 뒤늦게 메일링 리스트를 확인하고는 사과했지만 이 일로 나는 그가 나를 빈번히 빠뜨렸음을 알게 됐다.
4. 라이브 콘서트에 갔다가 자원봉사 스테프로 일하고 있던 어떤 여성과 부딪혔다. 내 입장에서는 그녀가 나에게 부딪힌 것으로 보였지만 그녀는 내가 자신을 밀었다며 큰 소리로 “What the hell!!”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그다음부터 내가 근처에 지나갈 때마다 (그녀는 문을 지키는 스태프여서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부딪히자마자 사과했기 때문에 뭘 더 어쩌란 건지 알 수 없었다.
5. 도난당한 자동차 번호판으로 교통법규 위반 티켓이 날아왔다. 내가 경찰에 도난 신고를 하고 번호판을 바꾼 지 이틀 뒤에 일어난 교통법규 위반이었다. 당연히 내가 한 일이 아니었고 나는 법원에 이의제기 서류를 접수했다. 법원에서는 도난 신고한 경찰 리포트를 가져오란다. 경찰 리포트를 신청했더니 현재 리포트 신청건이 4,500건 밀려 있어서 언제 될지 모른단다…
이상의 일들로 나의 마음의 평화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경찰 리포트가 4,500건 밀려있다는 메일을 받고는 진짜 욕이 절로 나오고 술이 당겼다. 애당초 일을 제대로 하면 내가 리포트를 신청할 일도 없지 않은가. 주민 대표는 또 왜 그 모양인가. 어떻게 메일링 리스트를 매번 타이핑하고 있을 수가 있는가. 콘서트장 스태프는 또 어떻고. 부딪히거나 떠밀리는 게 그렇게 싫으면 애당초 스탠딩 콘서트 스태프로 일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홈디포는 왜 설치에 200불이나 받고 제거는 안 한다는 것인가. 일반 핸디맨을 부르면 100불이면 집안에 웬만한 것은 다 고쳐주는데.
짜증이 부글부글 끓고 인류애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느꼈다. 애당초 나는 왜 좀 더 사람 냄새 나게 살고 싶어 했더라? 왜 단독주택 대신 복닥이는 콘도에 살고 마사지같이 사람 대하는 일을 하고 싶어 했더라?
사람이 멋지고 사랑스러워 인류애로 벅차오르던 순간들을 떠올리려고 했다.
절박한 순간에 낯선 사람에게서 받았던 뜻밖의 친절을, 봉사활동에서 만나 이야기 나눈 사람이 너무 멋진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감탄했던 기억을, 등산클럽의 자그마한 할머니가 왕년에 에베레스트도 오르고 수영으로 바다도 건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감동을, 부끄럽고 당황했던 순간 다독여졌던 기억을, 잘못하고 용서받았던 기억을, 나의 이상한 부분들이 받아들여졌던 기억을 떠올리고자 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관계 맺기 싫어했던 오랜 습관이 “그것 봐, 내가 뭐랬어?” 하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마음이란 참으로 얄팍하다. 그동안 너무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잘 흘러갔기에 작은 일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린다. 돈이 없어 밥을 굶던 때도 있었고, 매일같이 매 맞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의 내가 보면 지금의 나는 마치 꿈만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임에도, 나의 마음은 이런 해프닝들이 마치 생존의 위협이라도 되는 양 수선을 피운다.
이 이야기에는 결말이 없다. 나는 아직도 내 마음과 씨름하는 중이다. 나는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자아에게 “그래 그래 알겠어. 그래도 괜찮아” 하고 끊임없이 다독인다. 평화는 종착지가 아니라 매일 새로이 선택하는 것이다. 안전은 상태가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는 괜찮다는 마음가짐이다. 두려움과 사랑 중에 사랑을, 삶과 죽음 중에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