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지 스쿨에서의 불만

First World Problem

by 김쪼

최근 First World Problem (선진국 문제?)라는 말을 배웠다. 아래는 구글 검색에 다른 설명이다.

선진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겪는 매우 사소하고 배부른 투정, 혹은 아주 작은 불편함을 뜻합니다. 가난이나 질병이 아닌, 지나치게 풍요롭고 안전한 환경 때문에 발생하는 배부른 고민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이 말을 보고 이거다 이거야 싶었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프로 불편러 취급을 받았다. 작은 문제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왜 이렇게 하냐고 물어보고 개선점 제안하는 걸 좋아했다. 회사 다닐 때 불만과 질문이 너무 많다는 피드백도 받았다.


그런데 미국에서 회사 다니면서는 “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은데 말을 더 하지 않느냐” 는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받곤 했다. 미국에서는 확실히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더 많이 했고 그것이 권장되는 문화가 있다. 그래도 회사는 일하는 곳이다 보니 개인적인 불만을 말하는 것은 지양되었다. 그러나 마사지스쿨에서는 달랐다.


내가 다니는 마사지스쿨은 이층짜리 상가 건물의 일부 공간에 세 들어있다. 세 개의 실습용 방과 한 개의 강의실, 두 개의 사무실 공간, 작은 휴게공간과 로비로 이루어져 있다. 16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기수와 8명 정도의 다음 기수, 8명 정도의 중국어 반이 이 공간을 나누어 쓴다. 좁은 공간에 여러 명이 장시간 같이 생활하다 보니 언제나 복닥 복닥하고 서로 부대끼기 일쑤이다.


물론 90년대에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나로서는 딱히 문제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초등학교(그 당시 국민학교) 때는 50명도 넘는 학생들이 한 반에서 생활하는 것도 모자라 오전 오후반을 운영했다. 불편한 것이 당연했고 부대끼는 것이 당연했다. 개인적인 불편이나 욕구는 조용히 참아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앞서 말한 대로 불평이 많은 축에 속했기에 “왜 이렇게 불만이 많냐”, “네가 예민한 거다”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마사지스쿨에서 미국 사람들이 문제제기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속으로 ‘왜 저렇게 예민하고 불만들이 많지?’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육 개월 동안 마사지스쿨에서 반 친구들이 강사진과 스태프들에게 제기한 문제들의 예를 들어보자면,


- 너무 춥다

- 너무 덥다

- 공기가 탁하다

- 조명이 너무 밝다

- 화장실 냄새가 난다

- 카펫이 더럽다

- 의자가 딱딱하다

- 일부 학생들에게서 냄새가 난다

- 일부 학생들의 양말이 더럽다

- 시험 문제가 너무 많다

- 퀴즈에 안 나온 시험문제가 나왔다

- 퀴즈에 나온 문제가 그대로 시험에 나온다고 했는데 지문의 순서가 바뀐 채로 나왔다

- 슬라이드에 글씨가 너무 많다

- 선생님이 학습 게임을 시키는데 나는 조용히 자습하고 싶다

- 일부 학생들이 너무 크게 웃는다

- 중국어 반 학생들의 목소리가 크다

- 선생님 농담이 재미없다

- 일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

- 마사지 중 잡담하는 사람이 있다

- 프린트물이 너무 많다


이것은 내가 기억하는 일부이고 거의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군가는 무엇인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 강사들과 우리는 이것에 대해 토론하고 방침을 정하느라 오분 십 분을 쓴다. 나는 솔직히 그 시간이 제일 아깝고 그것이 나의 가장 큰 불만이다.


또 각종 개인적인 요구사항을 들어주느라 (조명 밝은 것을 싫어하는 친구를 위해 강의실 한쪽 불을 끄고 램프로 밝힌다거나, 소음에 민감한 친구를 위해 한쪽 문을 잠그고 커튼을 쳐둔다거나, 수업 대신 자습하고 싶어 하는 친구를 위해 휴게 공간을 내준다거나) 여러 가지 추가 규칙들이 생겨나고 공간이 더 어수선해지는 것도 불만이다.


그리고 무슨 놈의 알레르기와 각종 듣도 보도 못한 신경증, 공포증, 트라우마, 정신적 문제가 그리도 많으며 그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남들의 배려를 받아야 하는지. 가령 선생님이 “무릎을 들어 올릴 때 어떤 근육들이 쓰이는지 말해볼까?” 하고 수업 중 질문하면 한 친구가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 저는 ADHD와 청각정보 동시 처리 문제가 있어서 그런 식으로 즉석에서 질문하시면 대답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런 식의 수업은 자중해 주시면 좋겠어요” 하고 말하는 식이다 (오, 주여..)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불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가 좀 더 참으면 되지 뭐 하러 남들 불편하게 만드나 싶다. 그저 집에 와서 ChatGPT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미국에 와서야 내가 참 뼛속까지 동아시아인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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