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의 기록

네 번째 (마지막)

by 김쪼

(이전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네 번째: 과거를 이해하기.

정신분석학 계열 상담에서는 어린 시절을 중요하게 다루기에 나도 처음 상담을 시작했을 때 내 어린 시절을 분석하는 상담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게 현재의 문제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뭔가 어린 시절 고통스러운 경험을 이야기하며 한바탕 울고 나면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되기는커녕 감정만 북받치고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그래서 한동안은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는 과거 경험 분석은 다 미신 같은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상담/코칭 이후에 다시 어린 시절을 해석하는 작업을 하니 비로소 그 의미들이 와닿으며 왜 그것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내 생각이지만, 부정적 생각 패턴에 고착되면 어떤 삶의 변화도 일어나기 힘들고, 일상생활의 관리가 잘 되지 않아 건강, 학업, 일에 지장이 생기면 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또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릴 때 지나친 분노나 아픔 때문에 분석 작업이 쉽지 않을뿐더러 그런 격한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방어기제가 강화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과거를 이해하는 작업은 다른 치유 과정이 선행하거나 병행될 때 효과가 좋은 방법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분석학의 클리셰와 같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순간 눈물이 흐르면서 갑자기 마음이 평온해지고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마법 같은 경험을, 나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아니, 사실은 꽤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이것은 건강한 생활 습관이 잡히고 커리어가 궤도에 올라 자신감이 생기고 경제적으로 상당히 안정된 후에야 가능했다. 아래의 에피소드는 그중의 하나다.


이전 글에서 밝혔지만 나는 전형적 불안 애착 유형이다. 애착 이론에서 불안 애착 유형은 부모 중 적어도 하나로부터 충만한 사랑을 받은 경험이 있지만 그것이 일관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을 너무나 원하지만 그것이 없어질까 항상 불안해한다. 반면 회피 애착 유형은 부모가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정서적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아서, 정서적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것만 보면 나는 회피형이어야 했다. 나의 부모는 어떻게 보아도 나에게 충만한 사랑을 주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미스터리는 다소 뜬금없지만 디즈니 <라푼첼>을 보다가 풀린다.


디즈니의 라푼첼은 아기일 때 진짜 부모에게 받았던 충만한 사랑과 요람에서 올려다본 천장의 태양 무늬를 기억한다. 그렇기에 마녀 고델로부터 계속해서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자랐음에도 무언가 잘못됨을 무의식 중에 느끼고 탑 밖으로 나가고 싶은 강렬한 열망을 가진다. 이것은 그녀가 방 곳곳에 그려둔 태양 무늬로 표현된다.


나에게는 아주 오래된 설명되지 않은 이미지가 있었다. 내가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커다란 털 뭉치 같은 것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게 꿈이거나 영화 같은 데서 본 장면인 줄로 알았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태어나서 곧바로 부모에게서 떨어져 할머니에게 키워졌다가 일 년 정도 후에 다시 부모에게 보내졌다 한다. 한 살이 되어 다시 만난 부모는 어린 나에게 전혀 낯선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당시 모피코트를 즐겨 입었는데 그래서 엄마의 옷장에서 모피코트를 발견한 나는 그것이 할머니 것인 줄 알고 한동안 매일 모피코트를 붙잡고 울었다 한다. 할머니는 어린 나를 키우면서 주변에서 애를 망친다고 말릴 정도로 예뻐하셨다고 한다.


디즈니의 <라푼젤>을 보면서 갑자기 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많은 것이 이해가 되었다. 라푼젤이 요람에서 본 태양 무늬를 기억한 것처럼 나도 아기일 때 모피코트를 붙잡고 울던 경험을 기억했다. 태어나 일 년간 할머니로부터 받았던 무조건적인 태양 같은 사랑을 기억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충만한 사랑을 계속해서 찾아 헤매었다. 그래서 나는 회피 애착 유형이 아닌 불안 애착 유형이 된 것이다.


나의 성격적 특징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하는 것은 첫째로 스스로를 연민하고 용서하는 열쇠가 되기에 중요하다. 불안형 애착 유형에는 많은 부정적인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사랑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라던가, 여미새/남미새라던가. 나도 그런 점에서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겼다. 하지만 디즈니의 라푼첼이 귀엽고 사랑스럽다면, 오래전 받은 사랑의 기억을 잊지 못해 찾아다니는 나 또한 나름대로 귀엽고 애잔하지 않은가.


둘째로는 그것이 현재 상황에서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알려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내가 이상화하고 찾아다니던 사랑은 할머니가 갓난아기에게 주는 사랑이었다. 이것을 성인 간의 사랑에서 찾으려 하니 당연히 안될 일이었다. 일평생 그렇게 일방적이고 온전한 사랑은 한번 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안타깝지만, 내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것은 세상에 더 이상 없는 것이었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진실을 받아들인 후에야 좀 더 건강하고 성숙한 사랑을 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글에 담지 못할 많은 깨달음의 순간들이 있었고 지금도 아직 발견하는 중이다. 과거와 현재의 고리를 찾아내는 작업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잘 이해되지 않는 타인의 행동을 보고 저 사람의 과거에는 저렇게 행동하게 만들었던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훨씬 이해가 된다.


이 시리즈의 글을 쓴 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의 여정을 정리하기 위해서이지만, 상담을 여러 해 했지만 진전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도 있다. 한 가지 종류의 치료만 계속해 왔다면 다른 종류도 시도해 보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전혀 전문가가 아니므로 무엇이든 자신 있게 권유할 입장은 못되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종종 영감을 얻는 만큼 나의 이야기도 공유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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