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전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세 번째: 신체의 자유 되찾기.
보통 somatic healing 등으로 부르고 mindfulness(마음 챙김)와도 연관되는 것 같다.
Mindfulness 명상을 처음 접했을 때 신선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당시 이것이 어떻게 직접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지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숨 쉬는 것에 집중하는 훈련은 이후에 somatic healing 개념을 접했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여러 신체에 기반한 치유가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것은 기수와 말의 비유였다. 아무리 기수가 능력이 출중하고 지식이 풍부하다 해도 말이 동요해서 날뛰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레이스를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우선 말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기수는 이성, 말은 감정 혹은 신체다. 감정은 신체와 연결되어 있고 감정이 격앙된 것은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Fight or Flight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다룬 잘못된 생각 바꾸기나 일상의 문제 해결하기에서 여러 가지 좋은 생각을 했더라도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에서는 이 생각들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감정이 나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신체의 자유를 되찾는 것이 내 세 번째 치유 과정이었다.
나의 경우 전형적 불안 애착형으로 남자친구와 싸우거나 연락이 안 되면 급속도로 감정이 격앙되고 일상이 마비된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Fight or Flight 반응이 나타나서 당장 대화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거나 이럴 바엔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겠다는 극단을 오간다. 이성으로는 그렇게 까지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별일 없이 잘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 보려 해도 이미 감정이 격앙된 상태라 잘 와닿지 않는다.
Mindfulness에서는 이럴 때 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신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고 있는지를 관조하듯 인식해 보라 하지만 나의 경우 신체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피곤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신체적인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신체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어려울 수 있어서 이것이 명상을 오히려 방해할 경우에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대신 나의 경우는 잘못된 생각 바꾸기 훈련에서 나의 생각을 관조하는 훈련을 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어느 순간 잘못된 생각 패턴의 생각들이 마구마구 떠오르면 아 내가 지금 감정이 격앙되었구나 하고 인지할 수 있었다. 그때 숨을 천천히 쉬면서 ’ 내 생각 공장이 흥분해서 지금 이런 생각들을 만들어내고 있군 ‘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머릿속이 진정된다.
중요한 것은 이때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툴킷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다.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준비한다. 비가 오거나 밤이거나 직장에서 쉬는 시간에 잠깐 쓸 수 있는 것들도 준비한다. 나의 경우 이런 것들이다.
- 노래 부르기
- 산책하기
- 요가나 스트레칭
- 설거지나 주방 청소
- 요리
- 화분에 물 주기
- 식물 바라보기
- 따뜻한 차 마시기
- 자전거 타기
- 공원에 앉아 사람 구경하기
- 마사지 받기
중요한 것은 얼마나 나에게 효과적인 가이므로 사람마다 이 목록은 다 다를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에게는 소파에 파묻혀 따뜻하게 담요를 두르고 있는 것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겠지만 나의 경우는 혼자 가만히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만 떠오르는 타입이라 몸을 움직이거나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기분 전환에 더 도움이 된다.
이 방법들을 감정이 격앙되었을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자주 사용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충분히 느껴본다. 마치 평소 훈련을 통해 근육을 활성화시켜 두어야만 중요한 경기에서 잘 뛸 수 있는 것처럼 평소 마음이 안정된 상태를 자주 경험해야 필요할 때 그 상태로 쉽게 되돌아갈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이론이고 사실 나는 한번 불안한 상태로 들어가면 이 모든 것을 해도 완전히 평정한 마음으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남자친구와 싸우면 요가를 가고 자전거를 타고 설거지와 주방청소를 한 뒤에도 계속 마음이 동요된 상태로 남아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말하길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이 단 한순간이라도 가라앉았다면, 혹은 흥분의 강도가 5%라도 줄어들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 아주 조금 더 균형 잡힌 시각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노력을 할 때마다 내가 잘못한 부분이라던가 남자친구 입장에서 그랬을 법 한 이유라던가 하는 게 한두 가지는 더 생각난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somatic healing이 중요했던 점은 나의 ‘보통’의 상태에 대한 정의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나의 ‘보통’은 항상 감정적으로 살짝 동요되어 있는 Fight or Flight 모드가 기본이었다. 퇴근 후에도 일 생각에 사로잡혀 걱정하거나 집안일을 하며 짜증이 나 있었다. 생각은 다소 극단적이고 행동은 충동적이었다. 매일 잠깐씩이라도 평온한 마음 상태를 가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많이 바뀌었다고 느낀다.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