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의 저주 : 데자뷰-1

그때 그곳으로 돌아가리라.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지어다.

by 김조흐

제주시가 23.1도를 기록하며 역대 1월 최고기온을 갈아치웠다. 2020년 1월 7일,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오후 1시 제주시 기준 최고기온이 23.1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1950년 1월 17일 기준 최고 기온 21.8도를 넘어선 기록이다. 몇십 년 만에 찾아온 이상 현상에 제주도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일까? 아니면 제주도 어디선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2020년 1월 7일 0시 30분 제주시 기준 최저 기온은 18.5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최저 기온 또한 2002년 1월 15일 기록한 15.6도를 이후로 1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가 나왔다. 기상청은 또다시 밝혔다. 태평양의 따뜻한 공기가 한라산을 넘으면서 푄현상으로 산북 지방이 고온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이러한 고온 현상이 반복되고 있을 때 즈음. 한라산 어딘가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하아.. 하...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나는 것일까?..”

“그 년만 아니었어도...”


수현은 부상당한 다리를 부여잡으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의 아내. 아니, 그 썩을 년이 이런 맘을 품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번 제주도 여행도 그저 즐거운 추억을 쌓기 위한 그런 여행일 줄 알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수현의 상상과는 달랐다. 그의 아내 지선에게는 수현은 모르는 내연남이 존재했다. 언제부터였을지 모르는, 그녀의 은밀한 생활. 언젠가부터 수현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외면하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찜찜했던 기분이 현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제 수현은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지쳤으며 부상까지 당했다. 한라산 등반 도중에 마주친 내연남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스마트폰을 비롯한 여러 장비들까지 모두 강탈당한 채 알 수 없는 어딘가로 추락해버렸다. 가뜩이나 늦은 시간 출발한 산행이라서 이제는 한라산 정상으로 가는 길까지 통제가 되었다. 지선과 내연남은 작정이라도 한 듯이 조난당하기 딱 좋은 장소를 물색해두고 나를 그곳으로 유인했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유인한 뒤 사진을 찍어주는 척하면서 낭떠러지로 밀쳐냈다. 수현은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혼자가 되었다.


어둠은 찾아왔고.

‘내가 구조될 확률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아내가 조난 신고를 해주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내연남과 함께 수현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리기로 작정한 그녀가 굳이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서로의 관계에도 소홀하지 않았던가? 이번 여행에서 만회하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건만.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세상 일 아무도 모른다더니.


“젠장... 이렇게 끝날 순 없어!!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모든 게 다 지선이 년 때문이다. 그년을 만난 뒤로 내 인생은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그녀를 위해서 평생의 꿈을 포기했다. 최대한 그녀에게 맞춰주며 살아왔다. 내 38세 인생을 그녀에게 바쳤건만. 남은 것은 크나큰 배신감과 절망감뿐.


그녀를 처음 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내 속에는 그런 생각들로만 가득 찼다. 온몸이 그녀를 처음 본 순간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다. 제주도의 모든 기운을 향해서 소리쳤다. 순간 수현은 주위 온도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오로라와 같은 초록의 빛들이 사방으로 몰려들었다.


“그때 그곳으로 돌아가리라.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지어다.”


누군가의 낯선 목소리와 함께 수현의 시야가 점차 흐려졌다. 남은 것은 누군가가 잠시 머물렀던 약간의 흔적뿐.

몇십 년 만에 찾아온 제주도의 이상 기온은 수현이 사라진 후 점차 정상 기온을 되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