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으로 돌아가리라.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지어다.
거울을 보면서 생기발랄한 피부를 요리조리 만져보기도 하고.
옷을 훌러덩 벗어던져서 어렸을 적 몸매를 감상하기도 한다.
“음.. 역시 어렸을 때는 내가 한 근육 했었지. 이런 시절도 있었는데 말이야.”
조금의 감상 시간을 가진 뒤에. 무엇을 할지부터 생각해본다.
“가만 보자...”
오늘의 날짜를 보니 2002년 2월 4일이다.
지선을 처음 만났던 날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이 정도의 계절과 날짜였던 것 같다. 새롭게 인생을 살게 된 수현은 이번 생애는 지선과 같은 여자를 절대 만나지 않기로 다짐한다. 과거와 같이 살아간다면 결국 지선과 또 한 번 결혼을 하게 될 테니. 과거는 잊고 내키는 대로 인생을 살기로 한다.
시기를 보니 아직 대학교 개학은 하지 않았고. 친구들과 20세의 시작을 즐기며 한창 술도 마시고, 이리저리 놀러 다니던 시기인 것 같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2002년의 겨울 풍경을 즐기기로 한다.
“자~ 바람이나 쐬러 가볼까나? 죽기 전에 살아났는데 뭐 이제 두려울 것도 없다!!”
수현은 생각이 많지만.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한다.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잠시 즐겨도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겉옷을 입고 익숙한 풍경의 거리를 나선다. 익숙한 거리가 보인다.
“이땐 이랬었지... 옛날 생각나네 크... 아, 이제는 현실인 건가?”
수현은 현재까지 겪었던 일들이 모두 자신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고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인생에 대한 설렘도 함께 느낀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는 것이다. 거리를 걷다 보니 향긋한 빵 냄새가 나기도 하고. 2002년 특유의 패션이 눈에 띄기도 한다. 38세의 정신을 가진 수현의 입장에서는 2002년의 패션이 몹시 낯설고 촌스러워 보인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수현의 시선은 독특한 패션의 어느 여인에게로 향한다.
“저... 저 사람은!! 저 년은!!!!”
그렇다. 2002년 2월 4일은 수현이 지선을 처음 만난 날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38세의 정신을 가진, 신체 나이는 20세인 수현은 20세의 지선을 다시 한번 처음 만났다.
‘아... 지선이다. 망할 년.. 달려가서 죽빵을 날려버릴까? 아니면 그냥 지나쳐버릴까?’
이번 생애는 그녀와는 멀어지고 싶었기에. 애써 외면하려고 하지만. 당장 달려가서 따지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수현은 그녀에게로 향한다.
“야!!! 이지선!!!”
독특한 패션을 가진 20세의 지선은 수현이 있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린다.
“으응?? 누구세요..?? 제 이름을 어떻게...”
하지만 20세의 지선은 수현을 알아보지 못한다. 2002년 초의 세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하지만 과거로 돌아온 수현은 지선을 알아볼 수 있었다. 과연 그는 어떤 말을 건넬 것인가?
수현은 할 말이 차고 넘치지만. 마음속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이리저리 생각을 해본다. 20세의 지선에게 상처를 줘 봤자 38세의 수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주위 사람들에게 미친놈이라는 소리밖에 더 듣겠는가? 하지만 38세의 지선에게 배신까지 당하고, 죽기 직전까지의 상황에 놓인 수현으로서는 당장이라도 그녀의 얼굴에 온갖 쌍욕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에게 갑자기 해를 가한다면. 주먹에 온 힘을 실어서 강력한 펀치를 날린다면. 20세의 몸을 가진 수현은 젊음을 되찾은 동시에 경찰서로 직행해서 철창신세를 면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휘파람을 한 번 분 뒤 수현은 마음을 바로 잡는다.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실례를 해버렸네요. 옷을 센스 있게 너무 잘 입으셔서 너무 반가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이름을 부르게 되었어요..!”
“아.. 네...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어요?..”
“뭐랄까.. 왠지 그럴 것 같았거든요.”
횡설수설 이야기를 나누며. 일단은 넘어가 본다. 그리고 복수의 칼날을 위해서 일단은 친해져 보기로 한다. 모른 척하고 살 수도 있었지만 내 인생에 강렬한 한 방을 날린, 뒤통수를 날린 그녀를 차마 못 본 척하고 살 수가 없었다.
이렇게 그녀를 향한 복수의 시간은 시작되었다.
나의 복수는 2020년 한라산에 닿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조난을 당하는 대상은 바뀌게 될 테지...‘
무엇인가 익숙한 장면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데자뷰인 것일까?
왠지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수현과 지선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
거리 모퉁이에서는 멈추지 않는 초록색의 빛을 띤 팽이만이 하염없이 돌아갈 뿐이다.
팽이 주변에서는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때 그곳으로 돌아가리라.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