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조흐 Aug 01. 2020

사람과 사람의 아종 간의 사랑이 가능할까?

가장 뛰어난 예언자는 과거이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아스달 연대기)

사람족과 사람의 아종 간의 사랑이 가능할까?

작년에 재밌게 보았던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는 가능했다. 태고의 땅 '아스'에는 사람, 뇌안탈, 이그트 라는 세 개의 종이 있다. 사람은 외형상으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와 흡사하지만, 꿈을 꾸지 못한다는 드라마적 설정을 가지고 있다. 뇌안탈은 외형적으로 사람과 비슷한 부분이 많지만, 사람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졌으며, 야행성 동물과 같은 시력을 보유하고 있다. 흡사 늑대인간의 신체 능력을 가졌다고 보면 되겠다. 이그트는 사람과 뇌안탈의 혼혈로 이종 교배종을 말한다. '뇌안탈'과 '사람'의 특징을 모두 지닌 종족이다. 이그트는 뇌안탈 처럼 꿈을 꾸고, 사람 보다 강인한 신체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사람-뇌안탈-이그트를 구분하는 대표적인 기준은 '피의 색깔'이다. 사람은 붉은 피를, 뇌안탈은 푸른 피를, 이그트는 보라색 피를 가지고 있다. 아스달 연대기는 시원 설화인 단군 설화를 재해석하고 판타지적 설정을 첨가하여, 가상의 땅 아스에서 처음으로 '나라'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각기 다른 모습의 영웅들을 통해 그려낸 드라마이다. 아스 대륙에 최초의 도시, 최초의 국가, 최초의 왕이 탄생하는 과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요 인물로는 아스달 최초의 '왕'이 되고자 하는 타곤(장동건), 하늘 아래 가장 위대한 꿈을 꾸는 아스달의 이방인 은섬(송중기), 하늘 아래 가장 빛나는 꿈을 꾸는 예언의 아이 탄야(김지원), 은섬의 쌍둥이 형으로 타곤의 양자이자 후계자 사야(송중기)가 있다. 앞서 말한 사람족과 사람의 아종 간의 사랑은 주인공 은섬과 탄야, 사야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은섬은 뇌안탈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이그트'로 아스달 사람들에게 불길한 존재로 여겨진다. 쌍둥이 형 은섬 또한 이그트이다. 예언의 아이 탄야는 '사람'으로 이들의 사랑은 아종 간의 사랑인 것이다.


작년에 아스달 연대기를 봤을 때는 별생각 없이 그저 재미있게 봤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게 되면서 <아스달 연대기>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드라마 속 '뇌안탈'이라는 종족은 인류 역사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종을 모티브로 한 것처럼 보였다. 과거 지구 상에는 현생인류와 해부학적으로 구별되지 않을 정도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 함께 또 다른 영장류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간 대표적인 영장류는 <네안데르탈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드라마 속 '뇌안탈'은 '네안데르탈인'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조금씩 알게 되니, 그저 재미있게 드라마를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실제 역사와 드라마 속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해보고, 아스달 연대기가 시원 설화인 단군 설화를 어떻게 재해석한 것인지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스달 연대기의 세계관에서 사람과 뇌안탈의 차이점은 신체 능력의 차이, 피 색깔의 차이, 생활 방식의 차이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에서는 '사람'과 '네안데르탈인'에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존재했을까?


기원전 5만 년~기원전 3만 년 사이, 언어가 탄생한 역사적 시기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에게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신체적 자질이 있었지만, 단어는 언어가 아니다. 까마귀는 주변 환경 속의 다양한 대상을 가리키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까마귀는 인간을 가리키는 단어와 개를 뜻하는 단어를 갖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까마귀는 특정한 인간을 지칭하는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까마귀는 동료 까마귀들에게 깍깍거리면서 "파머 브라운!"이라고 말해줄 수 있지만, 그것은 단어일 뿐이다. 단어는 언어가 아니다. 진정한 언어는 단어끼리 결합해 무한히 다양한 의미 조합을 형성할 수 있을 때 시작된다. _<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P35
인간(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은 진정한 언어를 습득하면서 우리는 단순히 동료들이 뛰거나 싸우거나 침을 흘리도록 유도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수준을 뛰어넘었다. 우리는 동료 인간들의 머릿속에서 이 세계의 허상을 불러일으키는 소리를 만드는 수준으로 격상되었다. 두 사람이 내일 정오에 타코를 먹자고 얘기할 때 그들은 각자 상상하는 세계에서만 상호작용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은 동일한 세계를 상상한다. 동일한 세계를 상상하지 않으면 내일 같은 장소와 시간에 두 사람 모두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두 사람은 동일한 세계를 상상한다. _<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P36

네안데르탈인과 인간의 미래를 바꾼 그것은 '언어'였다.


인간에게 언어가 생기면서 종족의 역사가 달라졌다. 언어는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피리를 불기 시작하기 직전에 습득한 것이다. 수만 년 전 어느 시점에, 언어를 보유하고 있던 피조물들은 다른 피조물들에 비해 결정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진화는 우리가 인간이 완전한 언어 사용자가 될 때까지 그 언어적 특성을 꾸준히 선택했다. 그 결과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두 발로 걷는 다른 모든 영장류를 압도해 그들을 멸종으로 몰아넣었다.


언어 덕택에 인간은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도, 단일 목표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언어를 통해 서로 결합한 덕분에, 수많은 인간이 마치 단일한 사회 유기체처럼 활동할 수 있었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없을 때나, 소식이 끊긴 일부 구성원들이 뜻밖의 상황에 대처해야 할 때조차 서로 보조를 맞추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네안데르탈인들도 최소한 늑대만큼은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협조를 했을 테지만. 그것은 물리적 신호를 주고받는 그 당시에만 해당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과 같이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에는 소통을 할 수 없었다. 또한, '단어' 정도만 구사할 수 있는 네안데르탈인이었기 때문에 언어와 같은 구체적인 맥락상의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늑대, 까마귀와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언어가 생기자 우리는 나머지 모든 영장류와 다른 길을 걸었다. 우리 중 일부가 동굴로 들어가 벽과 천장에 멋진 그림으로 장신한 것이 바로 그때였다. 동물 몇 군데서 발견된 먼 옛날의 피리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음악도 그즈음에 탄생했다. …우리가 당시 장신구를 만들고 있었다는 점에서 패션의 탄생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도구의 정교화 수준이 극적으로 향상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석기에 국한되지 않았다. 뼈와 조가비와 뿔 따위로 물건을 만들었고, 지금 남아있지는 않지만, 아마 나무도 재료로 썼을 것이다. … 일단 언어가 생기자 도구 제작의 문이 활짝 열렸다. 어떤 도구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의 작업 모습을 굳이 지켜보지 않아도 언어를 통해 제작법을 익힐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을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고, 남들은 그것을 따라 할 수 있었다. … 집단의 어느 구성원이 그것을 봤다면 나머지 구성원 모두 그것을 본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_<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P42

언어의 탄생은 인간의 많은 부분들을 바꿔놓았다.


언어가 생기자 그림이 생기고, 피리가 생기고, 음악이 생겼다. 장신구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즈음 패션의 탄생이 일어났다. 언어의 최고 강점은 제작법과 같은 기록물을 통해 한 사람의 지식을 다른 구성원에게도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기록한 내용을 통해서 구성원 모두에게 동일한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일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는 일이지만, 기원전 5~3만 년의 세계에서는 역사를 바꿀만한 지구적인 사건이었다.

이 시기는 인간이 최초로 모종의 역사의식을 지닌 때, 인간이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를 발명한 때 일 것이다. 우주 탄생 이후 수십억 년 동안 수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어제'와 '내일'과 '내가 네 나이였을 때'와 '내 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 때'같은 것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에게는 서사가 생길 수 있다. …그 시점에, 그리고 그때부터 쭉, 인간은 명백하게 이 행성에 있었다. 그때의 인간들은 지금의 우리와 옷차림이 다르고, 우리만큼 자주 씻지는 않지만, 그들은 우리다. 명백히 우리다. _<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P42

인류의 뿌리가 되는 '인간'에 대해 알아갈수록 놀라운 점들이 많았다.


기원전 5만 년 전부터 언어가 시작되었다니. 언어가 없었다면 기록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기록물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현재의 인류가 과거 시대의 조상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책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를 읽기 전에는 먼 과거의 역사에는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현재'에만 집중하며 살아갔기에 '역사'라는 것에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과거에 가졌던 여러 의문점들이 하나 둘 해소가 되어갔다.


가장 뛰어난 예언자는 과거이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매우 다르다. 어쩌면 사소한 차이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버릴지도 모른다. 우리의 뿌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태초의 인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하나의 대륙에 살던 인간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전 세계로 퍼져 살게 되었는지, 어떠한 계기로 인간이 지구 상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살게 되었는지를 안다면 많은 의문 투성이었던 현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는 가장 뛰어난 예언자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일의 걱정은 내일에 맡기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