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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흐 Aug 23. 2020

사진은 본능이다.

사진의 역사로 알아본 감정의 변화, 테크심리학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는 주인공의 기나긴 인생을 강렬한 경험들 위주로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태원 클라쓰의 주인공 박새로이는 '장가'라는 거대한 적으로 인해 단 한 명 남았던 가족을 잃게 되고, 수년간 모은 돈으로 창업한 가게에 큰 타격을 입는 등의 수많은 고난을 겪게 된다.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몇십 년의 버팀 끝에 결국에 승리한 그는 "존버는 이긴다."를 몸소 보여준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되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드라마였다. 

이태원 클라쓰는 최고 시청률 16.5%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종영하게 된다. 


우리가 이태원 클라쓰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인생 편집' 덕분이다. 만약, 박새로이가 불합리한 이유로 인해 교도소에 끌려간 시절을 하루 단위로 모두 보여줬다면 처음에는 팬이었던 사람들도 매번 같은 하루의 반복에 지쳐 시청을 그만두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재미가 없고 지루해진다. 재미있는 스토리 위주로, 주인공의 고난 위주로, 그리고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장면을 위주로 편집된 이야기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으며, 주인공의 인생에 몰입된 시청자들은 매 화마다 강력한 시청 욕구를 자극받은 덕분에 지속적으로 드라마를 시청하게 된다.


직관적인 이미지 형태의 SNS로 대표되는 인스타그램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스타그램 피드 속 수많은 사진들은 대부분 인생의 '좋은 일'들만을 기록한다. 오늘 하루 중 제일 인상 깊었던 사진, 주말에 방문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시회의 인증 사진, 이번 주에 먹은 웨이팅 2시간은 기본인 맛집의 끝장 비주얼 사진, 6개월을 일만 하며 살다가 번아웃 직전에 가게 된 해외여행에서의 환상적인 순간들. 우리 중 대부분은 한 번쯤 이러한 방식으로 SNS 인생을 살아봤을 것이다. 좋은 일들만 보여주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나쁜 게 아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편집하기 시작한 것은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친화적 세대인 N세대(Net 세대)에만 극한 된 것은 아니다.

인생을 편집해서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해 조금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은판사진은 1839년 프랑스에서 처음 발명되었다. 

(좌) 다게레오타이프 카메라, (우) 다게레오타이프의 개발자 루이 다게르, 출처: 위키백과

은판사진은 전신을 발명한 새뮤얼 모스에 의해 미국에 들어왔으며, 은판 사진관은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게 된다. 처음에 사진은 인물보다 풍경을 담기에 더 적합한 예술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졌으나, 금세 인물사진이 대중화되었다. 노예 폐지론자였던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은판사진 덕분에 "고작 몇 실링의 주급을 버는 하녀조차 50년 전이었다면 귀부인이나 가질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한 형태의 자화상을 갖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제 백인과 흑인, 빈자와 부자 모두 자신의 자신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학자 로버트 태프트는 1850년 당시, 미국에 2,000개 정도의 은판사진관이 있었다고 추산했다. 1853년까지 미국인들은 이곳에서 300만 장의 사진을 찍었다. 당시 미국 인구는 2,300만 명이었다. 불과 몇 년 만에 미국인의 1/8 이상이 사진을 찍는 경험을 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사진사들은 예컨대 골드러시 때 캘리포니아 같은 신규 정착지에 특히 많았다. 그곳에 온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과 일상을 사진으로 남겨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주는 데 깊은 관심을 보였고, 사진사들은 사람들의 요구를 포착하여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사진을 찍어주었다. 처음에는 7X8센티미터 규격의 은판사진 한 장이 5달러 정도였는데, 1850년대에 이르자 가격이 절반 정도로 떨어졌고, 이후 더욱 저렴해져 아주 작은 사진은 25센트에 불과했다. 

사진이 발명된 초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주로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잘 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 때문인지 그들의 현실 생활을 그대로 반영한 모습보다는 훨씬 더 풍족하게 살아가는 듯한 사진들이 곳곳에서 생산되었다. 이러한 문화가 현재까지 이어져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이 아주 즐겁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9세기 사진이 발명된 초기 시대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캘리포니아에 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부에 가기도 전에 상상만으로도 그들의 생활에 대한 과시와 기대감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금을 캐는 광부들이 찍었던 은판사진을 조사해보면, 많은 젊은이가 서부에 가기도 전에 상상 속 캘리포니아 생활에 대한 자랑거리가 드러나는 사진을 찍었음을 알 수 있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은판사진관을 운영했던 사진사 제임스 라이더는 의욕에 찬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으러 몰려왔던 이야기를 남겼다.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 중에는 들고 찍을 여러 물건을 가져온 이도 많았다. (예를 들면) 텐트, 담요, 곰 고기를 구울 프라이팬, 버팔로 스테이크, 조그만 장난감은 물론, 금광을 찾았을 때 금을 씻어낼 물까지 가져왔다." 이처럼 초창기 사진들은 현실을 뛰어넘은 열망과 환상을 기록했다.

초기 사진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나는, 과거 사람들이 단순히 사진을 기록용으로만 사용했을 것이라고 어림짐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 of the 착각. SNS가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자신의 기대감, 생활에 대한 과시, 심지어는 자신이 원하는 콘셉트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다양한 재료들을 준비하기도 했다. 현대 시대에 무수히 넘쳐나는 콘셉트 사진들이 금을 캐고 다니는 금광 시대에도 있었다니 참으로 놀라울 일이다. 사실 놀라운 것도 놀라운 것이지만, 이 사실 자체가 그저 재미있고, 신기하기만 하다. 과거 사람이든, 현재 사람이든 간에 사진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은 '본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로만 봐서는 와 닿지 않을 수 있으니,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1800년대의 '사진'을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1858년경 조지 노스럽의 초상화. 출처: 미네소타 역사 협회

노스럽은 정찰대원으로 미네소타 전역을 일주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교역하는 등 모험에 가득 찬 삶을 살았지만, 금광을 캔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 은판사진에서는 채광 장비를 들고 자세를 취했다. 처음에 노스럽의 사진을 접했을 때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노스럽은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진 나오면 이걸로 자랑해야지!'라는 생각을 한 것일까?", "금광을 캐 보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일까?"와 같은 다양한 질문들이 떠올랐다. 심지어 초상화에는 <GOLD 290,000>이라는 문구가 적힌 돈뭉치가 나오기도 한다. 사진 속에 장비가 너무 많은 것을 보면 그 당시의 노스럽은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 같다. 과시욕이 넘쳤던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노스럽 본인만이 알 것이다. 


왠지 웃음이 나오는 이와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한 젊은 여성은 책이라고는 들춰본 적도 없었지만, "8절판 책을 숙독하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책이 뒤집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 작가의 기록에 따르면 음치였던 여성은 굳이 "베토벤의 가장 어려운 곡의 악보를 가냘픈 오른손에 든" 모습을 찍어달라고 요구했다. 그 외에도 "사실과 다른 모습을 가장하여 연출하려던 사람들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소심한 남성들은 결정적 순간이 되면 짐짓 근엄하고 용맹스러운 모습을 연출했고, 사악한 성품은 흔히 상냥하고 온화한 표정 뒤로 숨겼다.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서 위엄과 오만, 온화함, 거들먹거림, 유머, 그리고 슬픔의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결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러한 행동을 한 이유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싶은 본능 때문이었다. 8절판 책을 숙독하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던 여인은 문해력이 낮은 자신의 약점을 가리고, 사진을 통해 문해력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문해율이 낮았던 시대적 특성상 앞선 여인의 사례처럼 문맹이라는 자신의 약점을 고심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를 병적으로 염려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책을 잔뜩 쌓아두거나, 반쯤 덮인 책상 사이에 우아하게 서서 공부를 방해받았지만 후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럴 수 있다는 듯 학자 같은 표정을 짓거나, 학사모를 쓰고 실내용 가운을 입은 채 턱을 괴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취했다. 사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러한 방식에서 더 나아가 다른 방식으로 사진을 다듬는 작업을 한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결점을 감추거나 자신의 모습을 현실과 다르게 보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사진사들은 고객 다수가 자신의 모습이 현실과 다르게 묘사되는 데 집착했다고 증언했다. 19세기 중반의 윤리학자 T.S. 아서의 묘사에 따르면, "통통하게 살찐 여성은 약간 날씬해 보이는" 사진을 원했고, "마른 여성은 가슴을 풍만하고 팔은 둥글고 통통하게 보이길" 원했다. 사진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솜씨 좋은 사진사는 보이기를 바라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해 줄 수 있었다. 물론 사시를 치료하거나 수더분한 사람을 미인으로 바꿔놓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요즘은 다양한 필터 기능을 통해서 얼굴을 조금 더 갸름하게, 눈을 기존의 크기보다 1.35배 더 크게, 코를 오뚝하게, 피부는 하얗게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이 나온 초기 시대에는 사진 보정 기술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다. 그에 비하여 사진을 찍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현실과는 다른,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운 모습을 나타내기를 원했다. 조금 더 예뻐 보이고 싶은, 완벽해 보이고 싶은 감정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한 인간의 본능은 사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진사는 그들의 니즈를 적극 반영했다. 

일부 사진사들은 소품을 제공하는 정도를 넘어 사실 여부가 지극히 의심되는 사진으로 고객의 허영심을 채워주었다. 그들은 오늘날 포토샵이나 인스타그램 및 페이스북의 필터를 사용하듯, 인물의 특징을 조작하여 사진을 찍었다. 1892년에 작성된 기록에 시카고의 한 사진사가 경제적으로 성공한 비결이 상세히 적혀있는데, 비결은 바로 발목이 굵고 발이 큰 여성들을 "발이 작고 예쁘게" 촬영한 것이었다. 즉, 앉아 있는 사람의 옷 안쪽 솔기에 달아 내놓을 수 있는 가짜 발을 만들었던 것이다. 대상 인물의 진짜 발이 노출되어 발이 네 개로 찍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발을 잘 숨겨놓았던 사람들은 사진에 꽤 흡족해했다.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그런 속임수를 허영심, 그리고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 더 잘 보이려는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발이 작고 예쁘게 촬영하기 위해서 심지어 가짜 발을 사용했다니!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그런 속임수를 허영심, 실제보다 더 잘 보이려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과시와 허영심,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마음, 현재 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 모두 회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지금까지 사진이 발명된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사진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본능과 욕망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사진의 역사를 짧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진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는 과시의 수단이기도 했지만, 인종 평등을 위한 투쟁, 멀리 떨어진 가족 및 친구, 나아가 돌아가신 선조들과의 유대를 이어나갈 기회가 되기도 했다. 허영심을 반영하는 수단일 때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다른 감정, 관계, 가치의 상징이기도 했다. 즉, 자신을 나타내고, 타인과 연결하는 수단이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코닥 카메라의 등장으로 대중의 손에 들린 도구, 카메라는 슬픔보다는 행복한 순간을 포착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 웃음은 사회적 지위와 성공을 상징하는 힘이 되었다. 사람들은 허영심에 대한 두려움을 내팽개치고 자신과 자신의 삶의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이처럼 문화와 시대에 따라서 사진이 지니고 있는 가치, 감정, 의미가 달라진다. 


과거를 넘어 21세기로 돌아가 보자. 인스타그램 속 수많은 인생 사진들을 바라보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나만 빼고 다 잘 사는 것 같다.", "쟤는 오늘 또 여행 갔네."라면서 부러움과 회의감, 자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앞에서 본 사례처럼 그들이 올린 사진들은 그저 드라마 속 편집된 장면의 일부분이며, 인간의 본능에 따른 과장된 일상의 한 장면일 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화려한 인생 편집 사진들을 보고 느끼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이유를 알고 앞으로의 사진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지금 보다 조금은 덜 불행하고, 덜 비교하고, 덜 외로움을 느끼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결정권은 모두 우리 안에 있으니.


참고 도서: 테크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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