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현실이다.

반백수의 아홉수, 조흐에세이

by 김조흐

- 그 짧은 문장에 서른이라는 단어를 세번이나 쓰다니.

- 신피질의 재앙이네요.


내 마음을 울린 드라마 속 대사 하나.

이 말이 주는 울림이 그렇게나 강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스무 살이니까,]

[서른이라서,]

[곧 마흔인데,]


시간이라는 걸 분초로 나누어서 자신을 가두는 종족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오직 인간만이 나이라는 약점을 공략해서 돈을 쓰고, 감정을 소비하게 만든다. 이것이 인간이 진화의 대가로 얻은 신피질의 재앙이다.


1달 “일”, 3달 “휴식” 루틴을 가진 자발적 반백수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신피질의 재앙이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저 “먼 나라 이웃나라 인간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신피질의 재앙이 찾아왔다.

모든 시작은 아홉수에 찾아온 그녀로부터였다.


철벽녀 산다르크에서 이제는 나의 친절한 S가 된 그녀는

우리가 사귀기 전부터 늘상 말해왔다.


- 나는 건실한 사람이 좋아.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건실함의 뜻은 “생각이나 태도 따위가 건전하고 착실하다.”, “몸이 건강하다.”, “기업의 경영 상태가 좋고 성장 가능성이 높다.”이다.


하지만 프리랜서 반백수의 생활은 “건실함”의 그것과는 사뭇 거리가 멀었다. 반건달의 하루는 자유분방했다. 새벽 3~4시에 잠들고, 점심 즈음에서야 일어나는 그런 루틴. 전형적인 올빼미족에 가까웠다. 생활 패턴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몸도 그리 건실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단어인 “허약함”에 가까웠다는 건 여러분과 나만의 비밀이다. 하다못해 건실함의 3번째 의미로 끼워 맞춰보아도 실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만약 기업이었다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경영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치관, 취미, 이야기가 잘 통하는 우리였기에,

크게 부딪히거나 다투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S가 말하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


S는 공무원이었고, 나는 프리랜서였다.


그녀의 주 활동 시간은 낮, 나의 주 활동시간은 새벽.

서로의 활동 시간대가 너무 맞지 않았다.

심지어 우연의 우연이 겹치는 날에는

14시간 이상의 카톡 공백이 생기기도 했다.


연인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헤어짐의 원인으로 손꼽히는 “연락”의 문제.

지금 생각하면 “연애 위기 단계”로 격상될 만큼 크나큰 위험의 시기였던 것 같다.


일이 늦게 끝나서 늦잠을 잘 때는

S가 퇴근할 시간이 되어서야 하루를 시작했으니,

답답했던 그녀의 마음이 참으로 이해가 된다.


공무원인 S는 아침 일찍 출근한다.


오전 중 다양한 “일-휴식”의 루틴을 보내면서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간다. 기나긴 오전 타임을 보낸 뒤에 찾아오는 황금 같은 점심시간.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을 남자친구 조흐킴과 나누고 싶지만, 여전히 그는 답이 없다. 메아리 없는 울림에 노란색 “1” 표시가 없던, 일방적 소통의 문자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점심을 다 먹을 때 즈음 날아온 그의 카톡 하나.


- 나 지금 일어났어...


또는 “자다가 일어나서 침대 위에서 헤롱헤롱 거리는 이모티콘”을 하나 보낸 뒤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보통은 이모티콘을 하나 보낸 뒤 다시 잠에 빠져드는 게 그의 일상이다.


“건실한 사람”이 좋다는 S는 이러한 조흐킴을 보고 큰 회의감에 빠졌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게을렀던 내 과거에 대해 S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보내본다.


[미안해 S야! 그리고 고마워!]

게으름을 마스터할 뻔했던 나를 정신차리게 한 것은 아홉수에 찾아온 어느 사건 때문이다.


20대 후반, 아홉수의 나이. 서른이 되기 전의 시기에는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혼란의 순간을 겪는다. 일명 “제 2의 사춘기”라고도 불리는 혼돈의 시기. 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에 취직하여 어느 정도의 경력이 쌓이고, 20대 초반의 시기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느끼는 그런 시기. 외적으로는 강해졌으나, 내적으로는 아직 성숙하지 못해 현실적인 괴리감을 느끼기에도 딱 좋은 시절이 바로 아홉수다.


아홉수 혼돈의 시기에는 청첩장을 받을 일이 많아지면서, 여러 지인들의 결혼을 축하해주면서, 고등학교 동창이 댄스 모임에서 아내를 만나 속도위반으로 결혼해서 벌써 애가 둘이라는 소식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서로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 될 즈음 우리는 결혼을 꿈꾸게 되었다.


꿈의 방향성과는 무관하게, 나는 결혼에 대해 너무 몰랐다. 반백수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던 내게는 “결혼”이라는 것이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졌다. 앞서간 웨딩 선배 지인들이 많아서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접했던 S와는 달리, 내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 중에는 결혼한 사람이 거의 전무했다.


결혼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나”로 인해,

결국 S와 생애 처음으로 다투게 된다.

사실 다투었다기보다는, S의 서운함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 내 결혼 조건엔 네 통장 잔고는 포함되지 않아.

- 그치만 앞으로 같이 살 사람이 얼마나 성실한지는 중요하다고 생각해.

- 건실한 사람 옆에서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 우리 서로한테 그런 사람이 되어주자.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기로 했다.

인생을 조금 더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고,

더 건실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주기로.


결혼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준 S가 정말 고마웠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우리의 관계가 참으로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반백수의 생활을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는 “반백수 라이프”를 포기하기는 싫었지만,

그녀가 이야기하는 “건실한 청년”이 되고도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두 가지를 합친 “건실한 반백수”가 되기로 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삶에 대한 초점이 없던 게으른 반백수의 시대는 끝났다.


아홉수라는 애매한 나이에 찾아온

“신피질의 재앙”을 통해,

인생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게으른 올빼미 반백수의 삶을 살아가던 한 남자는 지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달리기를 하고, 하루 일과를 정리하며,

독서, 글쓰기, 영어공부와 같은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가고 있다.


인생에 불쑥 나타난 재앙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지만, 그것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니 이전보다 더 윤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있으며, 내면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건실한 생활이 힘들기도 하지만 꾸준히 이 생활을 유지하고 싶다. 인생이 한결 풍요로워지고 불면증이 사라진 것, 새벽노을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것과는 무관하게. S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믿음직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건실해지기 잘했다.”라는 생각이 든다. 참 행복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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