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은 최악이다.

by 김조흐

내 몸뚱아리에서 일을 할 때는 쓸모없는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회사의 것이었던 적이 있었다. 심지어 피로마저도.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진 어느 날.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 그런 날. 대표님은 불같은 사람이었다. 나의 정신상태가 정상과는 다소 거리가 먼, 미지의 영역인 “불멍”상태로 향할때면 어김없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날 바로 회식을 주선하곤 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되돌아보면 명확해진다. 갑작스런 회식은 악순환의 고리였다는 것을. 대표님의 선의와는 무관하게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저 휴식이 필요했을 뿐이다.]


매일 새벽2~3시까지 오로지 일만하며 살아왔다. 수면 부채가 쌓여 피로의 한계치에 내몰렸을 때는 컨디션이 최악으로 치밀어 올랐다. 거울을 잘 보지 않았던, 자아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필사 죽어가는 동태 눈깔에 그늘이 가득한 얼굴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척 하면 척, 안 봐도 비디오다.” 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 자 오늘은 오랜만에 회식(이라 쓰고 '비즈니스 술자리'라고 읽는다.)이나 해볼까?


- 정주임 시간 괜찮아? 김팀장은?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비즈니스 술자리.

회식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없었다.

무언의 찝찝함만이 남아있을 뿐.


업무가 결합된 미팅 이벤트는 저녁 식사에 이은 술자리까지 이어졌고.

피곤에 찌든 내 몸은 또 다시 피로를 복리로 쌓아갔다.


왜 거절하지 못했을까.


그저 쉬고 싶다는 말과 함께 잠이나 푹 잤으면 될 일을. 지금 생각하면 나도 ‘나의 상태’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메타인지가 부족한 나머지 너무나도 수동적인 사람이 되었다. 톱니바퀴의 일부분. 인생에 “일”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거절”이라는 단어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비즈니스 술자리는 매순간 반복되었다.

한계치에 도달한 내 몸은 결국 고장 나버렸다.

번아웃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한때는 불타오르는 열정을 가진 프로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심각한 슬럼프에 빠진 외로운 사람일 뿐이다. 보다 못한 대표님은 “휴가”라는 또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드디어 깨닫게 된 것이다. 김팀장에게는 회식이 아니라 휴식이 필요했다는 것을. 그러한 깨달음이 지속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회성에 그친 작은 보상으로는 탈진증후군이 회복되지 않았다.


무기력함의 연속.


회식이라는 악순환이 없었다면,

거절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서로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회식은 최악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순수한 참여 의지가 없는, 상대방의 의사를 묻지 않는 강제적인 회식은 최악을 넘어선 그것과도 같다. 상대방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정말로 필요한 본질에 대한 보상을 제시해준다면 직장 내 불행 빈도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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