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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흐 Mar 12. 2021

믿었던 고기마저 재가 되어버렸다

"뭔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 멈추세요! 에어프라이어 이야기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보통 프라이팬이나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요리를 해 먹었는데,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한 뒤로는 요리하는 시간이 기다려지더라고요. 최근 '레버리지'라는 개념에 빠지게 되면서 더더욱 에어프라이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프라이팬으로 조리할 때는 보통 프라이팬 주위에 머물면서 요리를 해야 했는데, 에어프라이어는 시간 설정을 해두고 가끔 뒤집어주기만 해서 좋더라고요. 뒤집지 않아도 되는 요리가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에어프라이어로 요리를 시작한 뒤 집안일을 하거나, 하던 일을 마무리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요리하는 시간에도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생산성이 높아졌다고나 할까요. 삶의 질도 높아진 것 같습니다. 에어프라이어는 기름 없이 뜨거운 고온의 공기로 요리를 하는 방식이라서 위생적이고 깔끔하고 건강에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오늘, 에어프라이어에게 뒤통수를 당했습니다. 아주 제대로 말이죠.



오늘도 어김없이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해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주재료는 삼겹살이었어요. 뜨거운 공기로 삼겹살을 요리하는 건 처음이라 맛이 어떨지 상당히 궁금했어요. 저녁 시간이 꽤 흘러서인지 배가 많이 고프기도 했고요. 삼겹살에 간을 하고 이것저것 준비를 한 뒤 에어프라이어 타이머를 맞추고 돌렸습니다. 삼겹살 요리법에서 타이머 15분을 1차로 맞추고 진행한 뒤, 1번 뒤집어 주고 또 15분을 돌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15분 타이머를 맞추고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던 게 있어서 마저 쓰면서 15분이 지나기를 기다렸죠. 잠시 후 경쾌한 '띵~'소리와 함께 1차 미션이 완료되었어요. 그 후 삼겹살을 한 번 뒤집은 뒤 2차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죠.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아직 다 안됐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타이머 시간이 아직 남았나 해서 글 쓰는데 집중하기로 했어요.



그 후로 또 글을 쓰다가 "음... 뭔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인가 기시감이 든 것이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때가 스스로에게 2차 경고를 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리가 다 되면 타이머 소리가 나겠지 뭐..."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글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글을 다 쓴 뒤에도 에어프라이어가 계속 작동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15분이 이렇게 길었던가? 음... 뭔가 이상한데"라면서 에어프라이어 안을 들여다봤어요.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상상 속 먹음직스러운 삼겹살이 아닌 '불타서 재가 되어버린' 정체 모를 형체만이 남아있더라고요. 그 순간 "아... 이럴 수가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아까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을 때 멈춰야 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인해보니 에어프라이어의 타이머 기능이 고장이 난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에어프라이어를 신뢰하고 믿었기 때문에, 타이머가 고장 났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습니다. 그저 15분이 내 생각보다 길다고 생각했었죠.



어떻게 보면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았으면서도 애써 외면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타이머가 고장 난 것을 외면하고, 시간을 마음대로 왜곡하면서까지 말이죠.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그것이 맞는다는 믿음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아예 막아버린 것이죠. 하지만 세상에 "100%"란 건 없습니다. 몇십 년을 함께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생각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수많은 변수 속에 둘러싸인 세상에서 무조건적인 믿음은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는 게 아닐까요.



오늘의 경험을 통해서 소중한 인생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트위터에 올라온 한 가지 명언이 떠올랐어요.


트위터에 올라온 '쎄하다' 명언


'쎄하다'는 그냥 감각이 아니라는 것. 이것은 몇십 년 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의 경험을 모은 빅데이터라는 것. 만약 에어프라이어의 타이머를 맞춰놓은 뒤 글을 쓰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 때, 한 번이라도 에어프라이어를 확인했다면 오늘 저녁은 맛있는 삼겹살 요리를 먹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쎄하다'는 감각을 애써 무시한 결과입니다. 새까맣게 타버린 삼겹살을 보며 아쉬움을 표한 뒤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 다시 요리하기는 힘들겠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간단한 계란 비빔밥으로 저녁을 대신했습니다.



믿었던 고기마저 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얻게 된 인생 경험을 통해 언젠가 다가올 위험한 순간과 절망의 순간을 조금은 줄일 수 있게 된 게 아닐까요. 꼭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앞으로는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하면서 고기를 태울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브런치 작가 소통방입니다.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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