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집에 두고 왔다. 하지만 이미 어렵게 잡은 택시는 출발하였고, 지금 되돌아가면 예약한 기차를 놓치는 상황이었다. 빠르게 이동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도 싶었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돌아간다는 선택을 포기하니 이제 남은 건 <노트북 없이 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택시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구글 아이디를 노트북이 아닌 다른 컴퓨터에서 로그인하면 되지 않을까?", "구글 아이디에 2차 보안이 걸려 있었던가?", "로그인한다 해도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걸까?"
하나의 선택이 사라지니 또 다른 가능성들이 보였다. 그리고 결론이 한 가지 나왔다. "다른 PC에서 크롬 사용자를 추가하여 구글 아이디로 로그인해보자. 동기화가 된다면 즐겨찾기도 그대로 따라올 테고 바로 일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결론이 나왔고 걱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평소에는 어딘가로 이동할 때는 매번 노트북을 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예 노트북 자체가 없으니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지금도 노트북이 없어서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중이다. 글을 쓰는 건 무리가 없지만 일을 하는 건 스마트폰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다른 PC가 필요했다.
2박 3일 정도로 머물 곳에 도착했다. 가설을 현실에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설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구글 동기화가 머나먼 과거까지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에 시작한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메모장이나 카카오톡에 저장된 정보들을 끌어모아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세팅을 끝내니 또 다른 문제가 찾아왔다.
집 컴퓨터에는 대부분의 아이디가 자동 로그인화 되어 있어서 사이트별로 아이디나 비밀번호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환경이 바뀌니 어떤 사이트든지 접속하려면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필요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사이트는 워드프레스였다. 이상하게 마지막에 사용한 비밀번호를 입력해도 계속 틀리다는 문구가 나왔다. 단 한 번도 변경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비밀번호 찾기를 시도했다. 이메일로 비밀번호 설정 URL이 도착했지만, 클릭하면 워드프레스 홈페이지로 이동할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뒤로하고 우선 할 수 있는 작업부터 해두기로 했다. 그러나 작업을 완료해도 워드프레스가 작동이 되지 않으니 결론을 맺을 수 없었다. 이것저것 클릭해봐도 돌아오는 결과는 같았다. 조언을 구해보기도 했지만 확실한 결과물은 없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머리를 비우고 싶었다.
그 후 몇 시간 가량이 시점에서 재도전해보기로 했다. 정답은 어떻게든 찾아지기 마련이니까. 다양한 루트로 워드프레스에 접속하여 이것저것 클릭해봤다. 그러던 중 반가운 문구가 보였다. 비밀번호를 찾지 않아도 워드프레스에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신호였다. 알고 보니 이메일로 전송된 url을 클릭하는 것만으로 1시간 동안 임시 접속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워드프레스에 잘 접속하여 비밀번호도 재설정하고 일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하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번에 사용하는 PC에는 기존에 사용하던 프로그램이 없어서 아쉬운 대로 유사한 기능을 가진 사이트를 활용했다. 사실 기존에 쓰던 프로그램이 일하는 데 가장 효율이 좋은 줄 알았다. 하지만 새로 활용한 사이트를 이용하니 작업 속도가 1.5배는 더 빨라졌다. 그동안 나만의 세계에,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의 발전은 시간이 갈수록 빨라진다. 새로운 기술이 계속해서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기존의 것만 고집하면 도태될 수 있다. 내 꼴이 그러했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들어 새로운 기술을 적절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알고만 있는 것과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높이만큼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해 어마어마한 차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알고만 있는 것을 잘 안다고 착각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실제로 행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이론과 실전은 분명히 다르다.
노트북을 집에 놔두고 옮으로써 색다른 경험을 했다.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내기도 하고. 앞으로는 내가 사용하는 노트북이 없더라도, 머무는 곳 주변에 PC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지금 같은 시대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이미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단지 내가 조금 늦게, 아니 많이 늦게 깨달은 것일 뿐.
우연한 기회에 얻은 새로운 관점. 누군가는 새로운 기회를 그냥 지나칠 테고, 또 다른 이는 이를 잘 받아들여 폭풍성장을 경험할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은 후자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니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기기만 있으면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