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제주로, 제주에서 청주로, 청주에서 고향으로
배를 타고 간 제주는 처음이었다. 기존에 타고 다니던 차를 가지고 간 제주였기에 배를 타고 갈 수밖에 없었다. 비용은 15만 원 정도 들었던가?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 스텝 생활을 할 예정이었기에 꽤 오랫동안 제주에 머물 예정이었다. 그래서 렌트하는 것보다 차라리 차를 끌고 가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이 났다.
제주도에 도착한 첫날은 꿈만 같았다. 원과 같이 차를 타고 제주도의 해안가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스텝 생활은 도착한 날 며칠 뒤부터 시작할 예정이었기에 그전에 먼저 제주도 여행을 시작했다. 날씨는 어찌나 맑던지. 해안가를 지나는 그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마음이 가벼우니 뭘 해도 기분이 좋았다.
아직 퇴사를 한 것이 실감이 나지는 않았지만 며칠 지내다 보면 차츰 실감이 나지 않을까 싶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바다를 보면서 여유를 보내기도 했다. 다음 날이었던가. 친구 진도 제주도로 놀러 왔다. 진의 친구는 제주도에 사는 어떤 형이랑 결혼을 했다고 했다. 언젠가 유학 가서 만난 일본인 친구인데 한국인 형이랑 만나서 결혼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 유라는 친구도 합세하여 꽤나 특이한 조합의 우리는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다. 며칠 동안 신나게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새 게스트하우스 스텝 살이의 날이 다가왔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설레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가 지낼 곳은 세화 해변 근처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스텝살이는 보통 2일 일하고 2일 쉬는 그런 시스템으로 진행된다. 종류로는 유급/무급이 있었는데, 나와 원은 무급 스텝으로 활동했다. 일을 오래 했기에 돈은 꽤나 쌓아둔 상태였다. 제주도에서 스텝 생활을 하면서 쉬는 날에는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다니려고 했다.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하여. 그래서 선택한 것이 무급 스텝이다.
제주도에는 이런 말이 있다.
"게하 스텝은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행자다."
스텝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여행자일 확률이 높다. 여행을 하다가 게하가 너무 좋아서 당분간 스텝을 하는 사람도 있고, 게하 주변의 장소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스텝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나처럼 퇴사 후에 제주도에서 살아보려고 지원하는 사람도 있으며, 제주도 한 달 살이가 버킷리스트라서 지원하는 사람도 있다. 스텝을 하는 사연도 참으로 다양하다.
첫날은 굉장히 어색했다. 우리가 간 곳은 바비큐 파티를 하는 소규모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여행자들과의 소통이 자유로워 보였다. 사장님이 편하게 쉬라면서 파티에 참여해도 된다고 했다. 며칠 뒤 육지로 가는 스텝에게 이것저것 인수인계를 받았다. 하루 종일 일만 하며 살던 나였기에 이런 자리가 몹시 어색했다.
그렇게 스텝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일을 하는 나'라는 색깔은 점점 더 옅어져 갔다.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사람들과 많은 생각을 나눴다. 나처럼 퇴사하고 여행을 온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저마다의 이유는 달랐다.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지구에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인생의 재미를 조금씩 찾아나갔다. 2년 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사실 퇴사를 하고 나서도 조금씩 하던 일을 하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저 휴식을 취하면서 내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했기에.
사실 기간으로 따지면 그리 길지 않게 제주도 스텝 살이를 했다. 1달 하고도 반 정도가 추가된 기간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그때의 추억이 아주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다. 3년이 지난 지금. 2년 동안 회사에서 일을 한 기억보다 제주도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더 기억에 남을 정도니까.
제주도 살이에 이어서 청주 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청주에서는 4개월 정도 살았다. 낯선 곳이었지만 고등학교 친구 원이 청주에 살았기에 할 수 있었던 선택이다. 원의 집에서 살면서 청주에 조금씩 적응해갔다. 그림 모임에 가서 그림을 배워보기도 하고, 취미로 블로그 글을 쓰기도 했다. 보컬 클래스에 가서 노래도 배워보고 사진을 배워보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 둘 도전해나갔다.
청주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도 하고. 새해 종소리를 듣기도 했다. 청주에 아는 사람이 조금씩 생겨갔다. 하지만 정작 '내가 왜 청주에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방황하면서 정처 없이 떠도는 느낌이랄까. 친구 중 한 명은 나에게 역마살이 심하게 꼈다고 했다. 이리저리 계속해서 떠돌아다녔기에.
돌이켜보면 퇴사를 한 뒤의 나는 앞으로 무얼 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 같다.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몰랐으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많은 것을 시도했다.
내 인생 최대의 소비 시대가 도래했다고 봐도 무방한 시기였다.
하지만 정작 마음은 공허했다.
다양한 활동들을 했지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미지수였다.
부산에서 제주도로, 제주에서 청주로. 방황을 하던 나는 결국에는 고향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휴학 중이던 학교를 계속 다니기로 했다. 얼마 남지 않은 학교였기에 이때까지 해온 게 아까워서라도 졸업은 하기로 했다. 일을 하려고 고향을 떠났던 나는 일을 그만두고 여기저기 떠돌다가 결국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무엇인가 이루고자 했던 꿈을 이루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