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의 반복이 부른 퇴사라는 결정

퇴사 후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by 김조흐

몸도 지치고 정신도 지친 나날들이 반복되었다.

대표님은 이런 내 모습을 눈치챘는지 간간이 휴가를 주기도 하고 많이 피곤해 보이는 날에는 회식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회식은 최악의 무리수였던 것 같다. 나는 그저 휴식을 취하고 싶을 뿐인데 대표님은 오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자주 회식을 하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피로는 더 쌓여가고 몸과 마음이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나를 위해서 한 행동이었지만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기나 했을까. 지금에서야 나도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때의 내가 너무 일에만 집중하지 않고 취미생활도 즐기고 사람도 만나보고 여러 활동들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무사히 슬럼프를 극복하고 계속해서 일을 하며 대표님과 함께 더 먼 미래를 내다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일 뿐. 과거는 현실이 되지 않는다.


악순환이 반복되던 어느 날 퇴사를 부르는 순간이 찾아왔다.

한창 일을 하던 나는 갑자기 목에 담이 걸려버렸다. 오른쪽 목과 어깨 사이에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가만히 있어도 찌릿찌릿한 고통이 나를 덮어왔다. 하루 종일 컴퓨터를 보면서 같은 자세로 일을 하다 보니 끔찍한 고통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통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나는 계속해서 일을 해나갔다. 어느 날은 대표님이 잘 아는 한의원이 있다고 해서 그곳에 찾아가서 침을 맞았다. 인터넷으로 담 걸렸을 때 푸는 방법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보고 따라도 해봤다. 그러나 이놈의 담은 침을 맞아도, 민간요법을 써도 잘 낫지 않았다.


대표님이 퇴근을 해서 좀 휴식을 취하라고 해도 나는 끝까지 남아서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회의감이 밀려왔다.

담이 걸린 부위가 너무 아프고 서럽기도 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일을 하기 싫어졌다. 모든 것을 다 던지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졌다. 슬럼프가 찾아와도 "그저 지나가겠지" 하고 무시하고 외면했다. 그렇게 슬럼프가 하나 둘 쌓이다 보니 결국에는 화산처럼 폭발해버렸다.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대표님과 함께 미래를 꿈꾸던 나는 플랜에 없던 <퇴사>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저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아무 생각을 하기 싫었다. 일이 없는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휴대폰의 알람들이 전부 사라져 버리면 했다. 거래처들의 문자를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았다.


대표님께 퇴사 의사를 밝히던 그날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감정이 복받쳤는지 울음이 터져 나왔다. 표현을 잘하지 않는 나였기에 눈물이 나올지 꿈에도 몰랐다. 나조차도 당황스러웠다.


대표님이 말했다.

"네가 힘든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자."

"대표로서는 네가 퇴사를 안 했으면 좋겠는데, 형으로서는 퇴사를 하고 더 많은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은 오늘은 다른 약속이 있으니 내일 다시 얘기하자."


퇴사를 하겠다는 말을 하니 후련하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대표님은 이왕 마음이 떠난 거 빨리 정리하고 떠나라고 했다. 내가 맡았던 일들을 정리하고 인수인계를 해나갔다. 퇴사를 하는 서류를 작성할 때는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내가 정말 회사를 떠나는구나."


퇴사 서류를 작성하는 중간에 직급을 써야 되는 빈칸이 나왔는데 무엇을 적어야 될지 몰랐다. 나는 사내 이사 이기도 하고 동시에 팀장이기도 했다. 내 정체성을 알 수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만 몰입했지 다른 부분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왔다. 퇴사 후에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일을 도맡아서 하던 프로 일잘러였던 나는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어버렸다. 일만 하며 살다 보니 일상의 남는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느 날은 친구 원과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나와 원은 제주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와... 앞으로 뭐하고 살지?"

"제주도에 가서 바다나 보며 살고 싶다."

"야! 그러면 우리 제주도 가서 게하 스텝이나 해보는 건 어떤데?"

"오~ 그거 짱 재밌겠다!! 나는 퇴사했고 넌 방학이니까 같이 ㄱㄱ?"


그렇게 나와 원은 제주도로 향하게 되었다.

나는 힐링을 위하여, 원은 캘리그라퍼라는 꿈을 위해 제주도로 떠났다. 우리는 각자가 바라는 이상향을 찾기 위해 제주도라는 장소를 선택했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스텝 관련 카페를 찾아서 마음에 드는 곳에 여기저기 연락을 보냈다. 그리고 한 곳에서 스텝 2명이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 가지고 있는 차를 끌고 제주도로 가려고 했기에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1도 알 수 없었지만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제주도행 배에 올라탔다. 과연 우리의 앞날에는 어떠한 일들이 펼쳐질지. 스텝 생활은 평탄하게 이루어질 것인지. 그것은 석가모니, 마더 테레사가 오더라도 모르는 일.


"나도 모르겠다! 일단 한 번 가보지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제주도로 가는 뱃길에는 알 수 없는 어둠만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