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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호 Apr 15. 2017

중국은 예측 가능한가

현대중국학회 춘계학술대회 참관기 2017. 04. 14

“중국은 예측 가능한가” 라는 주제로 열린 현대중국학회 춘계 학술대회에 다녀왔다. 오전 10시-12시 사이에는 다섯 분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같은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는데, 최근 국내 정세와 맞물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높은 관심을 반영하는 듯했다. 물론 진짜 누군가가 족집게처럼 중국은 이럴 것이다 라고 예측해줬으면 좋겠지만 그런 예측을 실제로 들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간 것은 아니고 각 분야를 대표하는 연구자님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다른 청중들도 마찬가지 였겠지만.


정치 분야의 조영남 교수님, 국제외교 분야의 이동률 교수님, 경제분야의 왕윤종 교수님, 역사학 분야의 전인갑 교수님 순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중국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예측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정치분야와 경제 분야의 발표가 흥미로웠다.


 조영남 교수님은 정치 분야 중에서도 최근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시진핑 체제를 평가했다. 그는 과연 독재자인가? 황제의 부활인가? 측근정치를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과 관련하여 그가 벌이는 정책결정과정의 불투명성에 따른 위험성, 관료들의 복지부동, 누군가 제기하기도 했던 중국붕괴의 위험성 등등 주로 서구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시진핑 체제에 대한 경고와 우려는 근본적으로 중국 정치체제의 불안정성에 대한 서구의 의구심과 맞닿아 있다. 또한 중국 위협론에 대한 다양한 버전 가운데, 부정적인 측면에 집중하여 이러한 중국 정치체제에 대한 불안정성을 지적하는 시선 역시 존재한다. 특히 민신페이(Min Xin-pei) 교수를 중심으로 일군의 학자들은 이러한 중국의 시장경제와 권위주의적 사회주의 정치체제에 우려를 표하면서 결국 ‘민주화’만이 대안이다, ‘민주화’가 답이다 라는 식으로 논지를 전개하기도 한다. 바로 여기까지가 서구에서 바라보는 중국에 대한 기존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영남 교수님의 견해는 다르다. 교수님은 시진핑 정치체제의 4가지 추세를 통해 반박하는데, 1.“핵심” 이라는 타이틀이 알려주듯 권력이 시진핑 일인에게로 집중되는 현상, 2. 강력한 반부패 기조, 3. 보수적인 정치개혁, 4. 사상 통제 및 사회통제의 강화가 그것이다. 이러한 4가지 추세들은 사실 서구에서 ‘시진핑 독재’의 근거로 나열되는 요소들인데, 조영남 교수님의 견해는 오히려 이러한 추세를 통해 시진핑은 현 정치체제를 강화하였고, 일사분란한 정책결정과정, 효율적인 정책결정 시스템을 확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또한 질문 토론 시간에 나온 대답을 통해 좀 더 보강하자면, 사실 이러한 시진핑의 체제 강화는 시진핑 개인의 특징, 혹은 권력욕 이라기보다는 일련의 정치 개혁들이 이미 그가 집권하기도 전에 만들어진 다양한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특히 군 개혁과 관련해서 들여다보면 더욱 그러한 측면이 잘 드러난다는 것. 질문시간에도 나왔지만, 굉장히 친중적인 시선인 것처럼 비춰질 수 있는 발표였다.


 흔히 중국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경우 시장경제를 추구하면서도 권위주의적인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중국의 특수한 경제 발전상황을 주류경제학에서 주장하는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중국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왕윤종 교수님의 경우 사실 애덤 스미스 이후 250여 년간 주류경제학 역시 끊임없는 연구와 토론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였고, 복잡 다양한 논의가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경제발전 상황을 주류경제학으로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루이스 전환점 혹은 소로우의 성장회계방식 등을 통해서 중국의 경제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다만 이론에 바탕을 둔 경제학적 해석에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보편성을 따지는 이론과 특수성을 드러내는 현실 사이에 발생한 갭으로 인해 주류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실질적 현상들 역시 공존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국 이전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이 겪은 것과 같이 경제발전 과정에서 ‘고속성장’은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 중진국 대열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현상이 목격된다. 대니 로드릭은 “하나의 경제학, 많은 조리법” 이라는 책에서 일정한 정도로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라고 한다. 특히 중국의 경우 워싱턴 컨센서스 라고 불릴 정도로 과거 서구의 경험뿐 아니라 다른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경험들을 토대로 캐치업 하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양적 성장일 뿐이다. 양적 성장에는 그리 큰 어려움이 존재할 수 없다. 문제는 바로 질적인 성장이다. 대니 로드릭의 견해에 따르면 중국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넘어가는 데에는 분명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중국 특유의 경직된 정치체제 하에서는 질적 성장의 핵심인 ‘제도적 선진화’에 이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구의 선진국들은 이룩했지만, 중국을 비롯한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그 문턱에서 좌절하고 만다는 ‘제도적 선진화’란 무엇인가? MIT공대의 대런 아제물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에 따르면 성공한 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포용적 경제제도(inclusive economic institutions)’이다. 즉, 자유 시장경제의 형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로 혁신과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포용적 정치제도와 제도화 없이는 포용적 경제제도를 통한 선진화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 역시 대니 로드릭처럼 중국의 경우에는 이 부분에 있어서 매우 비관적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결국 중국적 경제발전의 특징이라고 하는 ‘홍색 자본주의’에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교수님은 주장한다. 바로 정치적 경직성. 시진핑 체제의 권력 집중과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로는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같은 형상을 보고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현상을 통해 정책적 효율성을 포착한 조영남 교수님과 오히려 그 때문에 중국은 선진국가가 될 수 없다는 왕윤종 교수님.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모델을 통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민신페이가 주장하듯 “중국은 사회주의의 경직된 정치체제를 버리고, 민주주의에 가까운 체제 개혁을 통해 인민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그를 통해 수많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젊은 세대들이 그들의 잠재력을 내뿜고 서구와 당당히 경쟁할 수 있을 터이니” 라는 것인데.... 사실은 동아시아, 특히 중국적 특징을 얘기하며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모델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여전히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장 역시 만만치 않다. 조영남 교수님이 말하는 바 역시 이러한 효율적 - 그것이 지도자, 혹은 소수의 지도자 그룹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 정책결정과정을 통해 중국은 국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순들을 국가(당) 주도로 해결하는 과정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주장과 일맥상통 한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필립 황으로 더 잘 알려진 황쫑즈는 최근의 저작 “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구범진 역)”에서 서구에서 개발도상국의 발전 전략으로 흔히 써 먹는 ‘루이스의 전환점’ 이론은 최소한 중국에서는 틀렸다 라고 주장하였다. 즉, 루이스의 주장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전통 농촌의 노동시장과 도시의 근대적 노동시장 사이에 제3의 노동시장이 발생하여 소위 ‘비정규경제’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1억이 넘는 농민공, 농촌에 거주하지만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비정규 노동자, 도시의 비정규 노동자 등이 포함되어 중국 노동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게다가 저임금의 전통적인 농촌 경제가 계속해서 지속하는 현상을 보임으로서 빈부격차는 더욱 확대되어 가고 있는 실정인 것도 루이스가 말하는 이론과 다르다. 즉, 중국은 아직까지 전환점에 도달하지도 않았고, 도달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므로 국가가 개입하여 전통 시장과 도시 시장, 그리고 제3의 시장 사이에 균형을 맞추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 황종쯔의 주장이다. 즉, 중국식 사회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도농간 빈부격차의 심각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인도처럼 수많은 무산계급을 양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농민공을 포함한 농촌 경제가 여전히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 승포제와 향진기업을 통해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즉,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중국의 농촌사회가 서구의 길을 따라 대농장화하고 자본주의적 발전경로를 따르게 될 경우 미국이나 유럽처럼 기계화 자본화를 통해 잉여노동력이 대량으로 발생하여 그들이 도시로 이동하게 됨으로서 루이스의 전환점에 다다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인도의 경우처럼 무산계급을 끝없이 양산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국가가 나서서 사회주의적인 체제 아래 가족단위 중심의 소농체제가 승포제와 향진기업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소득은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중국이 이만큼이나 발전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도시 중심의 산업화의 영향 뿐 아니라 가족단위 소농 중심의 향진기업을 통해 잉여 생산물을 끊임없이 도시로 공급했던 농업 측면에서의 혁명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왕윤종 교수님이 마지막에 말씀하신 중국 금융체제에 대한 부분은 전적으로 동감이다. 중국이 굴기하고 G2라고 불리는 것에 비해 위안화의 위상은 너무나 초라하다. 최소한 금융적인 측면에서 중국은 ‘삼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 세계의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것을 그 누구보다 빨리 알아챈 것은 복건성 경제의 중심인 샤먼의 지역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빨리 달러를 모으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외환시장뿐 아니라 지역 경제에서 가장 신뢰받는 화폐 역시 달러화가 되어있었다. 파운드화에서 달러화로 세계 화폐의 패권이 이동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복잡한 국제정치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달러를 사야될 시기임을. 화폐는 신뢰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국가를 ‘신뢰’하기 시작했었다. 미국이 착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이 국가에서 발행하는 화폐를 교역 단위로, 혹은 재산 축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그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는 것도, 급격히 하락하는 것도 아닌 매우 안전한 화폐라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다. 물론 자유 시장 경제 라는 시스템과 미국 패권 아래에서. 중국은 과연 신뢰할 만한 나라인가? IMF 특별인출권 통화바스켓에 편입되어 기축통화의 대열에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안화가 국제결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6%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중국은 여전히 신뢰 받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아직도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국제 무역의 결제 화폐로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중국의 금융시장이 경직된 국가체제의 통제 아래 언제든 가치가 변할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불신이 그 화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중국은 기존에 유지해 오던 사회주의적 정치체제를 그대로 이어갈 것인지, 서구에서 말하는 발전모델을 따를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는 것이 두 발표자뿐만 아니라 다른 다섯 발표자들의 견해를 듣고 든 생각이었다. 결국 핵심은 중국이 서구의 발전 모델을 따를 것인가, 다른 실패한 국가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중국만의 제3의 길을 통해 베이징 컨센서스, 즉 중국식 발전모델을 스스로 개척하여 워싱턴의 그것을 대체하는 헤게모니의 전환을 이룰 것인가의 문제인 듯하다.


 마지막 백승욱 교수님의 말씀이 인상 깊었다. 우리가 중국을 바라볼 때에 중요한 것은 시간의 중첩이라는 것이다. 즉 현재의 중국은 시장경제를 도입해 현재는 꽤 자본주의화되었지만, 1949년 이래 사회주의적 정치, 경제, 사상 실험을 거치기도 했으며, 그 이전 서구 제국주의의 영향력 아래 근대 서구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더 이전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가 전통에 기반하여 중화 제국질서를 운영한 경험 역시 존재한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중국이라는 대상은 앞서 언급한 다양한 시간적 차원들이 중첩되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해석에 있어서 어느 한 부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 토론회처럼 학제간 다양한 요소들의 난상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 -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 그 요지였는데, 지금의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얘기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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