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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호 Feb 28. 2017

[잡상] 달러와 위안화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 혹은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끝났을 때,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신해혁명 이후 군벌 난립부터 시작된 기나긴 전쟁이 마무리되고 드디어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 기대하였다. 그러나 “끝의 시작 the Beginning of the End” 이라고 칭했던 어느 학자의 말처럼, 그들에게는 국공내전이라는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영국으로부터 미국, 소련으로의 패권 이동과 그에 따른 냉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공내전과 냉전의 시작에 가장 민감하게, 그리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반응한 이들은 중국의 지역 상인들이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화교 배출지이자 복건성 경제의 중심인 샤먼廈門의 지역 상인들은 이미 달러를 모으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외환시장뿐 아니라 지역 경제에서 가장 신뢰받는 화폐 역시 달러화가 되어있었다. 파운드화에서 달러화로 세계 화폐의 패권이 이동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이 발행하는 위안화가 지난 2016년 10월 1일 달러화, 파운드화, 유로화, 엔화와 함께 IMF의 특별인출권 통화바스켓에 편입되어 기축통화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전부터 주창해 온 일대일로, AIIB 창설, 브릭스 투자개발 기금의 형성 등등의 궁극적인 목적 중 하나인 달러화와 대등한, 혹은 달러화를 넘어서는 통화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는 것이라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진핑과 리커창이 줄기차게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유럽 등을 순방한 이유 중의 하나 역시 위안화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서 이기도 하다. 이미 중국은 남아시아를 비롯한 낙후된 아시아 지역 곳곳에 항만과 도로를 건설해 주면서 그 대가로 위안화 통화 협정을 맺고 있기도 하고.

다만 중국은 1945년 복건성 샤먼의 상인들이 달러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 미국이 그들 땅에 도로를 깔아주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저 알아차린 것일 뿐이다. 세계의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갔음을. 그리고 앞으로 미국의 시대가 될 것임을. 복잡한 국제정치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달러를 사야될 시기임을. 화폐는 신뢰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국가를 ‘신뢰’ 하기 시작했었다. 미국이 착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이 국가에서 발행하는 화폐를 교역 단위로, 혹은 재산 축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그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는 것도, 급격히 하락하는 것도 아닌 매우 안전한 화폐라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다. 물론 자유 시장 경제 라는 시스템과 미국 패권 아래에서.

중국은 과연 신뢰할 만한 나라인가? 국제결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6%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중국은 여전히 신뢰 받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아직도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국제 무역의 결제 화폐로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과연 미국 어느 중소 도시의 무역상들마저 위안화를 사 모으기 시작하는 날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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