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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호 Jan 31. 2022

최초의 주식회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흔히 동인도 회사를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VOC,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해당되는 얘기다. 영국 동인도 회사가 설립된 1601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설립된 1602년 이전에도 제노바나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합자회사 형태의 상업 관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요 상인들을 중심으로 자본금을 모아 회사를 설립하여 장거리 항해에 대비한 동인도 회사가 최초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심지어 근대 이전 중국 상인들에게도 장거리 항해를 위해 합과라는 형태의 합자 관행이 있었다. 이는 대규모의 자본이 드는 사업에 종사하는 상인들이 위험부담을 독박이 아닌, 골고루 지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택한 동서 공통의 관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OC를 최초의 주식회사라고 하는 이유는 네덜란드 상인들은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면서 IPO를 공시하였기 때문이다. 즉, 기업공개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주식을 넘겨주고 자본금을 모집하였다. 이건 세계 최초가 맞다. VOC 장정 10조에 이 땅의 모든 거주민들은 이 기업의 주식을 구매할 수 있다고 되어 있고, 11조에 불특정 다수의 잠재적 주주들에게 기업공개를 통해 어필할 것을 결의하였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네덜란드 상인들이 진심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향신료 무역이 대박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희망봉을 찍고 인도양과 동남아시아, 남중국해로 향하는 항해에 돈이 많이 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VOC는 당시로써는 파격적이었던 이러한 시도를 통해 영국 동인도 회사에 비해 10배가 넘는 초기 자본금을 모집할 수 있었다. 


주식회사, 즉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음지의 자본금들을 모두 양지로 끌어올려 유망한 기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형태의 이러한 상업제도는 이후 아시아의 상인들과 유럽 상인들 사이의 격차를 크게 늘리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방대한 자본을 굴리고 있던 화상들이었지만, 19세기, 20세기 전 시기에 걸쳐 영국 상인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여기에는 압도적인 과학기술력과 더불어 유한 책임의 주식회사 제도를 통해 모인 대량의 자본력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20세기 초중반까지도 대부분의 화상들은 여전히 혈연, 지연에 기반한 폐쇄적 합자회사 형태의 기업운영을 고수하고 있었고, 창출된 수익을 출자한 주주들에게 돌려주기 바빠 사업의 확장에 재투자하지도 못했다.


이러한 차이는 회계장부에서도 드러나는데, 화상이나 중국 상인들이 폐쇄적인 단식부기 방식을 사용했다면, 서구 기업들의 경우 주주모집을 위해서는 돈의 출입이 투명하게 관리되어야 했기에 복식부기 방식을 고안하여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몇몇은 바로 이 차이가 근대 동과 서의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매개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최근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하면서 여기에 반발하는 연구들도 나오고 있다. 


어쨌거나 근대 동남아시아의 화상들은 그런 이유로 영국의 기업가들이 동원한 광대한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화상들은 주로 영국인들이 별로 손대지 않는 역내의 유통이나 도농간 물류, 현지인 대상 도소매업, 화교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업 등에 파고듦으로써 영국인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최소한 현지인이나 인도인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월등한 상업적 영향력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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