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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Oct 27. 2024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션 베이커)

경계에 선 사람들

               화려한 색의 영화 세트장 같은 모텔, 매직캐슬이 보이는 길을 아이들과 함께 따라가다 보면 흡사 그림책에나 나올 것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의 상가가 보인다. 그리고 폐허로 변해버린 공터도 함께하는 그 길의 끝에는 꿈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고 광고되는 디즈니랜드와 아주 고급스러운 리조트도 존재한다. 대규모 테마파크로 구경 올 사람들을 상정하고 1960년대에 플로리다에서 대규모로 건설된 숙박시설은 현재에는 집이 없고 생활이 힘든 사람들의 마지막 보금자리로 남아있다. 길거리로 나앉기 직전의 경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며 그들은 이렇게 이질적으로 만들어진 숙박시설에 거주한다. 

 팍팍한 어른들의 생활에 관심 없는 아이들은 하루 종일 그저 신나게 논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 사무실에 빌붙으면 시원해서 좋고 거기에다 구걸해서 얻은 아이스크림까지 있으면 더욱 즐겁다.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차이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경계를 아직 완벽히 깨닫지 못해 즐거운 무니와 그 일당들은 여전히 매니저인 바비를 속 썩이며 매직캐슬 모텔을 비롯해 거대한 관광지 주변의 쇠락한 공간을 누비고 다닌다. 그 폐허의 공간에는 쓰러져도 여전히 자라나는 울창한 나무가 있고 사파리에서나 볼법한 동물이 사는 늪이 있으며 큰 새가 노는 호수도 있다. 무니와 아이들은 도시의 사람들이 꿈꿀 거 같은 자연 속에서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 펼쳐진 그곳은 자신을 누일 마지막 보루인 싸구려 모텔과 노숙의 아슬아슬한 경계 속이다. 사람들이 가장 싼 월세를 내고 살고 있는 곳은 그나마 그 쨍한 색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런 사람조차 살 수 없는 곳은 결국 꼬마 무니 일당들에게 불벼락을 맞는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이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경계는 존재한다. 무니와 즐겁게 놀던 스쿠티도 이 화재 사건에 의해 갈라진다. 무니는 여전히 자유롭게 그 무시무시한 경계의 공간을 뛰어다니지만, 그 자유는 지독한 자본 사회 안에서 더 이상 허용되기 힘들다. 무니의 엄마는 막장의 밑바닥을 전전하며 간신히 집세를 매꾸지만, 비 냄새를 맡으며 뛰어놀고 별빛 아래에서 소원을 빌며 늘 무니와 함께한다. 새파란 하늘과 아름다운 무지개가 그림처럼 떠오르고, 어지럽게 울창한 숲에서 뛰어노는 천진하고 자유로운 무니의 모습을 귀여운 꼬마의 일상이라고 예쁘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무니를 항상 즐거움에 방치하는 무책임한 엄마는 결국 무니의 경계마저 무너뜨린다. 

  무니의 장난은 항상 자유분방하고 과격하다. 이 꼬마의 언어에는 본능적으로 피아를 구별하는 무시무시함이 깃들어 있다. 아이는 정말 귀엽고 예쁘다. 이는 어린 동물이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귀여움을 연상시키지만, 그저 찰나의 선택에 불과하다. 매직캐슬이라는 경계에 존재하는 어른들은 무니의 생명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선의를 가질 뿐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영화는 마냥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으로 항변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답게 그 성격과 행동이 드러나고 무니는 대책 없이 자유롭고 무책임한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간다. 영화 속 어른들의 선명한 리얼리티는 즐거운 꼬마들의 불안한 판타지가 된다. 그렇기에 금방 붙잡히고 곧 빼앗겨버릴 너무나 예쁜 꼬마 무니의 자유를 마냥 응원할 수는 없다. 그들의 현실은 쨍한 색감의 화면처럼 시리고 아프다. 이렇게 무니의 가족뿐 아니라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이 영화의 시선에는 작은 편견조차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극단을 향해가는 사회의 안전망은 느슨해진 고리를 찾기가 더 어렵다. 무지개 아래 묻힌 황금을 꿈꾸는 예쁜 꼬마들의 대책 없는 낙천에 미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이 영화는 어찌할 도리를 찾지 못한 어른들의 마음을 베어내는 잔인한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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