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으로 살고 있을까
무언가를 가슴에 묻고 산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그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만 과연 그것이 인간의 삶에서 가당키나 한 것일까? 차라리 그냥 내가 패륜이 되 말든 그 위기의 공을 나 아닌 다른 쪽으로 던져버리는 것이 훨씬 편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짐을 넘겨버렸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의 앙금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짐을 떠안은 나 아닌 다른 이는 나에게 아마도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은 성가신 얼룩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옷을 점점 더 입기 난감하게 만드는 얼룩, 결국 인생이란 사람이라는 옷에 이렇게 얼룩을 쌓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인생이란 옷을 입기 시작했으므로 그것은 낡음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향해 끝없이 가고 있는 것이다.
이혼 직전의 큰딸, 사촌을 사랑하는 둘째 딸, 큰 언니의 딸을 건드리는 호색한인 중년 남자의 약혼녀 셋째 딸, 무시하지 못할 상처들로 인생에 걸쭉한 얼룩을 제법 묻힌 이 웨스턴가의 세 딸은 자살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일찌감치 짐을 던져버린 약물에 찌든 엄마의 독설로 또 마음을 다친다. 황량한 사막에서의 무더운 8월, 계절과 공간이 주는 짜증도 엄청나다. 집을 떠난 이후 아버지 장례식 같은 큰일이 생겨서야 겨우 얼굴 한 번 마주하게 된 자매들은 고향에 머무는 동안 하나씩 지뢰 터지듯 드러나는 과거의 일들을 전혀 마음의 준비 없이 만나게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이모와 이모부 그들의 뿌리였던 어른들이 깊이깊이 묻어 두었다고 생각했던 어두운 상처들을 보게 되고 파헤쳐진 그들의 비밀의 무덤은 결국 이 세 딸에게 엄청난 무게의 공을 던져버린다.
사건 혹은 상처들이 공기 중에 드러나기 시작하자 이들은 대책 없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아니 각자 스스로는 주저앉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혀 밑의 칼을 살벌하게 빼어 든다. 풍비박산도 이런 풍비박산이 없다. 세상의 공기는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매정하게 몰아치고 그들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아마도 죽을 때까지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될 것이다. 어쨌든 그들의 가장 암울한 무덤이었던 약물중독을 벗어날 수 없는 엄마의 삶은 그녀를 가장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정부의 배려로 그나마 비루한 삶이라도 이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나마 죽기 직전 자신의 아내가 누구와도 살 수 없을 걸 알았던 아버지의 가장 큰 속죄 혹은 배려로 이루어진 일이다. 폐인이 되어버린 어머니를 돌보는 일, 어쩌면 가족인 그들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겠지만 그들이 단지 가족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타인의 몫이 되어 버린 것이다.
‘참 지랄 맞다 이 가족’ 이란 카피가 가슴에 와서 콱 박히는 이들의 이야기에 당신들은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그런 질문을 쉬이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내 눈의 들보도 해결 못 하는 나 자신이 할 말은 아닌 듯하다. 세상에 이런저런 사연 하나 가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삶의 정답일 거 같은데 이건 정말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삶이란 정말 어렵고 어렵다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며 떠나버리는 딸들, 가족은 남아있지 않고 휑뎅그렁한 그 고향 집을 바라보는 마음은 황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