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란?
'성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몸이 커지는 것 이외에 마음이 또는 정신이 어떤 단계를 넘어서는 것을 우리는 이해하기 쉽게 ‘성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러한 몸과 마음과 정신의 성장이 과연 우리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단순한 결론 또는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하고 반추하게 되는 행동을 배우는 것 그래서 나와 함께 얽힌 타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 나의 모든 것의 범위가 제약될 수 있는 상황도 견디는 것, 아마 이러한 것들을 성장이라는 범주에 끼워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이 영화 <환절기>는 명백히 성장영화다. 게다가 영화 속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눈에 보이지 않게 일상에 묻혀 있는 일들이고 뭔가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인지하기 힘들고 그렇기에 그냥 일상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 그들은 너무나 힘들다. 그리고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절은 얼마나 많은 변화를 반복해 왔을까? 계절은 네 단위로 쉼 없이 달라지는데 그기에 삶에 있어서 환절기라는 것은 어쩌면 늘 반복되는 일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단지 일이 터진 순간에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남달랐던 일로 간주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이미 인생에서 지나간 일이라고 치부하거나 쉽게 회고한다. 우리는 보통 요동치지 않는 마음을 평상심 혹은 일상심이라 한다. 일상, 보통의 삶의 상태 하지만 일상이라는 것은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정 상태가 아니다. 일상이라는 단어 아래에는 마치 백조의 유영처럼 사람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공존하고 있다. 미처 하지 못했던 일과 생각들, 거기서 드러나는 아픔과 고통, 일어나고 있던 일들을 인지하지 못했던 무심함에 대한 스스로의 자책들. 상황이 터지고 나면 일상이 무너져 버렸다고 아픔을 호소하지만, 그것들은 의도적으로 묻어 놓았던 것들이지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아닌 것이다. 아닌 척 모른 척이 그냥 수면위로 올라온 것일 뿐이다. 그래서 더욱더 아프다.
아들 수현의 사고 후 일상이 달라져 버린 엄마 미경은 그냥 지나가고 있던 일들을 수습하기 위해 돌아보기 시작한다. 수현과 둘도 없는 단짝인 줄 알았던 용준은 친구가 아닌 연인이었고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수현의 아버지는 필리핀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외도한 지 이미 오래전이다. 갑자기 시작된 것 같은 미경의 불행은 수면 아래에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올라오기 시작했을 뿐이다. 보이기 시작한 위기에 대해서 그녀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현의 비밀이었던 용준의 도움을 조금씩 인정하면서 그녀의 눈은 점점 이해의 시선으로 달라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되어 간다. 그리고 수현이 기적적으로 눈을 뜬다.
엄마 미경과 애인 용준 사이에 누워 어색하게 미소 짓는 수현은 두 사람이 넘어온 아픔의 시간은 이제부터 반복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힘든 시간의 고비를 넘어온 미경과 용준은 그 시간들이 준 고통 때문에 또 다가올지 모를 환절기를 예전의 처음 그때처럼 부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려웠던 시간 동안 미경이 알게 된 아들 수현의 비밀도 이미 일어나고 있던 일이고 남편과의 이혼도 이미 진행되고 있던 일들이었다. 미경의 주변에서는 모든 사건이 수현의 사고와 함께 한꺼번에 찾아온 불행들이라 말한다. 하지만 어차피 숨 쉬고 살고 있는 이 삶 속에서 그 일들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지만 알려 하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내 무심함에 반기를 든 내 삶의 반란, 미경은 어떤 반응도 할 수 없는 수현을 돌보며 천천히 그 무심함을 삶에서 거둬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거둬내는 과정 중에서 용준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란다면 누구에게든 갑자기 닥쳐온 삶의 반란에 대해 배신감에 고통스러워하고 당황해서 실수로 그 고통을 더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 이제야 다시 환절기라는 일상이 시작될 수현의 미소가 이미 멀어진 듯 보이는 용준과의 사랑도 아니 어색해져 버린 엄마와의 생활이 늘 그의 곁에 있는 그의 일상이고 삶이므로 조금만 당황하고 조금만 고통받고 그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되어줬으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