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영원히 죽지않는다
영화의 시작, 감독이 깨어난 곳은 극장에 붙어있는 비밀스러운 방이다. 깨어난 그는 극장에 들어가 관객들을 보지만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잠자고 있는 듯 보인다. 어쩌면 영화는 꿈이다. 감독은 사람들의 꿈속처럼 하지만 그 사람들의 인생 속으로, 드니 라방이란 배우를 오스칼이라 이름으로 거대한 리무진에 태워 파리 시내의 한가운데로 드려보낸다. 아침에 한 가장으로 출근하는 드니 라방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연기한다. 광인이 되어 카일리 미노그라는 힙한 모델도 만나고 세상의 음지에서 자신을 죽이기도 한다. 드니 라방이란 배우는 세상에서 드니 라방이라는 역할로 모든 인생을 보여준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어떤 역할도 끝나지 않는다. 그냥 삶 자체가 영화이다.
출발점에서 그는 현재 영화가 도달한 기술의 발전을 연기한다. 아름다움도 욕망도 우스꽝스러운 옷과 점 속에서 놀랍게 구현된다. 그러다가 아주 평범한 사춘기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영화 속에는 다양한 인생이 담겨 있고, 그의 얼굴에는 그 모든 삶이 담겨있다. 중반에 이르러 그는 삶에 도착한 죽음을 연기한다. 누군가의 삶을 끝장내는 죽음이 있는가 하면 한 사람의 삶이 다한 죽음도 있다. 하지만 드니 라방은 영원히 죽지 않는 길 위의 연기자다. 그런데 이 영원한 무대에서 우연히 다른 리무진을 탄 진을 만난다. 카일리 미노그가 분한 진은 진 세버그라는 그리움의 얼굴이며 아름다운 이름이다. 아마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영화 속에서 감독은 그녀가 여전히 연기자로 살아있기를 소망하는 것 같다. 그래서 누벨바그의 시작이었던 뮤즈 진 세버그를 리무진에 태운다. 그리고 드니 라방처럼 그녀도 역할에 충실한 비극을 맞는다. 죽음의 공포, 죽어간 배우에 대한 회한, 그러나 감독은 어디선가 진 세버그가 살아서 다른 인생의 누군가를 연기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현재 화면 위를 누비고 있는 드니 라방의 미래도 진을 대하듯 불멸하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완성되어 가는 이 영화의 가장 깊은 의미이다.
이 영화가 드니 라방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내면은 삶에서 기억되는 의미 있는 순간이다. 인생을 살아오며 모든 시간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레오 까락스 감독의 영화 속에서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것은 배우들의 강렬한 이미지다. 영화 <나쁜피>나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춤을 추며 뛰어가는 드니 라방과 줄리엣 비노쉬의 강렬함은 영화를 본 관객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행복했던 혹은 불행했던 경험은 잊을 수 없는 이미지로 뇌리에 남아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든다.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리무진 안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진 세버그처럼 드니 라방 역시 불멸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렇게 기억 속에 집을 지은 배우는 영원히 휴식할 수 없다. 그의 휴식은 홀리 모터스 즉 은밀하게 움직이는 분장실을 벗어나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 휴식도 온전히 그의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진의 노래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혹은 누구로 살았던 건지 스스로 알 수 없다. 하지만 배우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길 위의 배우를 태우고 사람들의 삶 속을 누빈 운전사 셀린과 리무진은 불 꺼진 차고 속에서 하루의 의무를 다한다. 운전사는 익명으로 사라지고 리무진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사라져가는 옛 영화를 그리워하며 잠든다. 영화는 불 꺼진 스크린이 존재하는 영화관에서야 휴식할 수 있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 아름다운 뮤즈들은 영원히 삶을 이어가길 감독은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