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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1962, 존 포드)

웨스턴 장르의 아버지가 준 선물

by coron A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1962)는 존 포드 감독의 마지막 흑백 영화다. 그리고 웨스턴이라고 일컬어지는 장르가 거의 변화해 가는 시작 단계에 놓여있다. 웨스턴 영화는 50년대 후반 60년대를 기점으로 내용이나 형식이 많이 변화되었다. 안소니 만, 세르지오 코르부치, 세르지오 네오네, 샘 페킨파 같은 감독들을 통해서 수정주의 서부극이나 이탈리안(당시는 마카로니) 웨스턴 등으로 불리며 또 다른 형태의 서부 영화를 만들어 냈다. 웨스턴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존 포드의 초기 서부극들, <역마차>(1939), <황야의 결투>(1946), <아파치 요새>(1948), <리오그란데>(1950) 등의 영화에서 보여준 광활한 모뉴먼트 벨리나 주인공의 정의로운 전투, 이유 없이 악랄한 아메리칸 원주민, 혹은 아파치 등은 <수색자>(1956)나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1962) 같은 영화에서는 달라지거나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개척의 역사가 얼마나 야만적이였는지를, 글을 배우고 문화를 익히며 정치를 알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드러낸다. 서부극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면면은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1995년 작 <용서받지 못한 자>는 수정주의나 이탈리안 웨스턴이 사라져간 그 자리에 또 다른 웨스턴 영화의 이름을 새겼다. 시네마에서만 유일한 이 장르는 <슬로우 웨스턴>(2015), <헤이트 풀 8>(2015), <퍼스트 카우>(2019), <파워 오브 도그>(2021) 같은 영화들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도 웨스턴은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가장 독창적이자 역사가 짧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그 지점을 대치하는 그들의 고유한 문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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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아메리카의 서부 개척 혹은 웨스턴 영화가 변해가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이다. 주인공 랜스 스타더드가 가는 신본이라는 작은 마을은 아직은 철도가 지나가지 않는, 문명의 혜택을 받기 힘든 위치에 놓여있다. 신본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리버티 발란스는 초기 서부영화에서 현상금 벽보로 등장할 거 같은 인물이다. 그는 아마도 위 농장에 고용되 마을 사람들을 괴롭혀 그들을 떠나게 할 목적을 가지고 있는 듯 하고 그 무법의 마을로 들어가는 랜스는 젊은 링컨을 연상시킨다. 유약해 보이는 지식인의 상징이기도 한 제임스 스튜어트의 모습은 존 포드의 초기 영화 <젊은 링컨>(1939)의 헨리 폰다가 겹친다. 리버티 발란스에 강도를 당하고 몰매를 맞은 랜스는 그와 가장 뜻을 같이하지만 행동 양식이 정 반대에 놓여 있는 톰 도니폰을 만나 목숨을 건진다. 톰 도니폰 역의 존 웨인은 초기 서부영화에서 만나던 모습처럼 여전히 멋있다. 하지만 늙고 중후해진 모습은 이미 <수색자>에서 그 변화의 징후를 보였다. 법으로 응징하겠다는 랜스와 총을 들라고 강요하는 톰, 두 사람 가운데 야만에서 문명으로 변화해 가는 드라마틱한 인물인 할리는 결국 그 갈림길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인물이다. 할리의 마음은 톰 도니폰에서 랜스 스타더드로 바뀌어 간다. 모든 야만을 대표하는 인물인 리버티 발란스가 마을에서 사라지고 신본의 주민들은 자신을 대표하는 사람을 선출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마을의 모습은 변해간다. 결국 리버티 발란스라는 인물을 총으로 쏜 행위는 야만의 행동이지만 그 야만을 끊어내는 결단의 행동이기도 하다. 놀라운 것은 그 결단의 행동에 정치가 품고 있는 음흉한 속내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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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가 신본의 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영화는 그 속에서 국가의 4부, 즉 의회(입법), 사법, 행정 거기다 언론까지 21세기 현재에 갖다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상의 이치를 보여준다. 노년의 감독은 그저 영웅주의로만 비치던 웨스턴 장르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며 거기다 문명사회의 행보가 어떤 방향으로 향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그려 넣는다. 랜스는 상원의원으로 성공하고 신본으로 돌아오지만, 그의 그림자에는 야만을 끊어낸 고통이 여전히 뒤따른다. 이 때문에 영웅은 이름도 없이 쓸쓸히 삶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 영화는 인류의 삶과 사회, 문화 등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다. 비록 존 포드의 마지막 영화는 아니지만 광대한 그의 필모그라피 속에서 거의 마지막에 위치하는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는 존 포드라는 세계의 멋진 마지막 울타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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