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새로운 태도를 만들어내다
그들, 춘식과 덕배 그리고 길남은 돈을 벌기 위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다. 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서울의 변두리에 정착한 그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영화에서 보이는 반복되는 이미지는 열심히 살아도 변하지 않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일상이다. 그들이 힘겹게 상경하는 과정과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 그리고 현재. 노동의 강도가 조금은 나아졌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그들의 생활은 고달프다.
가진 것 없고 경험이 일천한 젊은 그들은 하대당하고 천대받는다. 하지만 그렇게 그들을 경시하는 듯한 다른 이들의 삶도 늘 좋은 날은 아닌 것 같다. 80년대 서울의 변두리는 평온했던 시골의 풍경은 사라져가고 그 안의 사람들은 더 먼 변두리로 밀려간다. 그들의 모습도 상경한 세 명의 청년의 고단함과 다르지 않다. 난개발로 파헤쳐지고 사람조차 구별되지 않는 어두운 땅 위에서 떠밀려난 이들이 유령처럼 떠도는 을씨년스러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런 곳에서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 살아간다.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는 포장마차에서의 한 잔과 한창 파헤쳐진 지저분한 땅에 소변을 보며 세상을 향한 나름의 결기를 보인다. 영화는 서로 나이를 따지고 금지된 곳에서 노상방뇨하는 등의 일상을 떠들며 작은 유머도 잃지 않는다.
이러한 고단한 일상을 살고 있는 그들이지만 반짝이는 미래를 꿈꾸며 낭만적인 연애도 한다. 길남은 연애하는 진옥에게 그의 꿈을 맡긴다. 적극적으로 춘식과 연애하는 미스 유는 세상에 관심도 많고 꿈도 크다. 덕배의 연애는 우연한 일로 계층을 넘어간다. 디스코장 장면 속에서 덕배의 춤사위는 춤을 추는 다른 사람들 사이를 헤집는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자존심을 영화는 김도향의 노래로 함께한다. 하지만 홀 천정에 설치된 거울 속에 비치는 그의 모습은 왠지 처연하다. 덕배는 집을 가지고 차를 가진 명희와 잠깐 부자처럼 데이트하지만, 계층을 뚫고 올라오는 듯한 하층민의 도발에 상위 계층은 폭력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명희는 덕배의 전화를 받고도 그의 목소리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던 길남과 춘식의 결과도 실패의 연장이다. 진옥은 길남의 돈을 갖고 도망가고 미스 유는 마을의 졸부 김회장의 애인이 된다. 춘식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다.
인권이나 착취의 개념도 없던 시절, 지금의 기준으로 기함할 만한 일들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80년대의 풍경은 부가 가진 자의 인성을 대변한다. 부유한 명희나 명희를 따라다니는 남성의 인성은 가진 만큼이 타인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고 허세와 비난, 조롱이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가 된다. 그리고 죄의식 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이로 인해 덕배는 곤경에 빠지지만 길남과 춘식이 그를 돕는다. 그리고 상처 나고 피곤한 덕배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춘식의 여동생 춘순이다. 이러한 개념없는 폭력 앞에서 그들의 생명과 존엄은 그들의 연대에 의해서만 버틸 수 있다. 영화는 이렇게 사람들의 계급을 그들의 행동을 기준으로 설정함으로써 느슨한 서사 속에서도 인물간의 구조를 완성한다. 세 청년이 일하고 핍박받는 서울 변두리의 모습 역시도 형식적인 완성에 일조한다. 조명이 거의 없는 어두운 밤, 네온사인이 힘겹게 반짝이는 서정적인 정서와 그 위를 덮는 익숙한 음악은 대중 영화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한다. 그리고 그들의 지난한 삶을 지켜주는 것은 그들의 우정이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그러하듯 영화 속 세 청년의 이야기에도 딱히 큰 사건은 없다. 이들에게 벌어진 일은 재수없는 삶의 일부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일상이란 이러한 행동과 시간의 반복이며 그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가는 것이다. 이렇게 느슨한 서사 속 세 청년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의 사람들은 그 시대 극단적인 개발의 레일 위를 끊임없이 달려가는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이 보여주는 리얼리티는 난개발이 진행되는 듯한 실제 장소에서 이루어진 촬영으로 인해 만들어진다. 실제 네온사인을 이용한 어두운 거리의 모습과 청년들이 앉아 있는 포장마차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과 그림자로 만들어지는 애틋한 이미지는 예술 영화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기에 익숙한 유명 뮤지션의 대중음악을 배경으로 사용하면서 관객들의 정서에 상업영화로서도 기능한다. 80년대에 시도된 이 영화의 새로운 촬영 방식은 2차 대전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시작된 뉴 시네마의 늦은 도착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영화가 세트장을 벗어나 보통 사람들의 일상의 공간에서 서사가 아닌 이미지로 기록되는 새로운 물결이 한국에서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그들이 날아온다. 힘겹게 서로 등을 맞대 기대어 서서 그 바람을 이겨낸다. 하지만 삶은 늘 그렇듯 다시 그 바람에 그들은 날려간다.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하는 세 청년의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누구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삶이 풍요로움에 넘쳐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 좋은 날인데 바람이 부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서로 기대었던 듬직한 등을 믿으며 그들은 각박하게 변해가는 이 세상을 살아간다. 80년대의 시작, 그 어떤 말도 표현도 할 수 없는 서슬 퍼런 억압의 시대에서 영화는 젊은 청춘들이 살아가는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대중 영화로 만들어냈다. 이후 세상은 이러한 밑바닥 노동자들의 그 마지막까지를 쥐어짜며 고도성장을 해왔다. 이 영화는 그들의 존엄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냈고 한국 영화 속에서 어쩌면 낮은 자를 존중하는 태도를 만들어낸 프런트맨의 역할을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