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BIFF
은행의 중간 간부쯤 되는 한 50대가 어느 날 정시에 멀쩡히 출근해서 자신의 상사와 후배를 향해 총을 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자리로 조용히 돌아가 앉아 그가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주인공 폴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꼰대의 그 모습이다. 잘 나가는 금융회사의 간부에다 정말 근사한 요트도 한 대 가지고 있고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고 흔히들 겪는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는 예민한 아들이 있으며 그들이 후원하고 가족같이 지내는 아프리카 출신의 청년도 있다. 정말 모든 것을 갖춘 가정의 가장이다. 그런데 왜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그의 상사를 향해 총을 쏠 수밖에 없었을까? 그런데 이야기를 잘 따라가다 보면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냉정한 금융회사에서 그는 회사가 요구하는 그 모습으로 정말 잘 순응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회사에 잘 순응하면서 그는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 생활에 그냥 끌려오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그가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영화 속의 폴도 그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도 그 사실을 함께 깨달은 그 순간 그 삶은 해결책이 없는 그냥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 하나의 낙오된 인생으로 전락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었다. 대부분의 가장이라 불리는 사람은 저렇게 살 수밖에 없었을 텐데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인생은 도대체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 것일까? 나 역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고 있고 저런 식의 삶의 유형도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서 있는 한 형태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우리가 살면서 죽을 때까지 이루어야 하는 것이 도대체 뭘까? 만약 주인공이 그런 부를 이루지 못하고 그냥 욕심 없이 살았더라면 그런 아름다운 부인과 풍요한 환경은 아니었더라도 어느 날 아침 자신의 상사를 쏘고 자신의 입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그런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영화제 기간 중 주말 표는 모두 예매가 동이 난 상태라 이 표는 정말 광클과 100% 운빨로 구한 거였다. 영화의 시놉을 읽어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로랑 캉테의 <Time out>이었는데 로랑 캉테는 정말 최근에 발견한 괜찮은 감독이었다. 몇 년 전인지 그는 칸 영화제서 <The class>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그의 영화들은 사회의 문제들을 아주 심도 있게 다루는데 가령 가난하고 아름다운 '아이티'가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 어떻게 유린당하는 지를 보여준 <남쪽을 향하여>라든가 충격적이었던 <Time out> 같은 영화라든가 그는 사회의 깊은 어떤 현상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풀어내는 이야기꾼이다. 어쨌든 뒤늦게 알게 된 로랑 캉테의 영화와 유사한 느낌이 들어 선택한 영화였는데 아쉽게도 이 영화는 로랑 캉테에게 견주기는 영화가 좀 지루하고 좀 빈틈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극장 안에서 재미는 일도 있었는데 뒤늦게 구한 표라 좌석이 가장 뒷자리 사이드였다. 영화제 일을 많이 한 친구의 애길 들어보면 영화마다 좌석이 겨우 생기면 step들도 눈치껏(영화제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영화를 보는 일을 흔이 있는 일이라 전날 밤을 새운 듯한 영화제 step인 두 친구가 영화를 보러 왔었다.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고민하던 A와 자신은 그냥 자겠노라 던 B는 처음 대충 앉았다가 자겠다는 친구 B가 영화를 볼 것이라는 친구 A를 위해 구석자리로 들어갔다. 어떻게 됐을까? 나중에 영화가 쪼금 지겨웠을 때 슬쩍 보니 구석에 앉은 B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도 마시며 영화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겠다던 A는 내 옆에 앉아서 쌔근쌔근 잘 자고 있었다. ㅋㅋㅋㅋ 친구들 고생이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