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얼굴
진실은 게으르다.
스포트라이트의 팀장인 로비는 이미 몇년 전에 자신이 이 영화 속 사건의 실체를 기사화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뿐만 아니라 그외 사건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도 이미 짧게 단편적으로 그가 있는 보스턴 글로브에서 다루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게다가 이미 몇 년 전에 정보를 제공했던 사람들 중에는 포기하고 쉬쉬하며 비리까지 저지르고 있던 변호사도 있었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깊이 내려져 있는 종교의 핵심인 신부들이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아이들을 유린하고 있었는데 이 공동체의 사람들은 그다지 방어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저 사람들의 관심이 적었다는 이유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은 트라우마 때문에 망가진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종교의 지도자들은 사회지도층으로 동시간을 존경받으며 살아왔다. 이러한 사실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보스턴 글로브지의 스포트라이트 팀에 의해서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이 진실은 왜 이렇게 늦게 도착한 것일까?
이 게으른 진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무관심이다. 영화가 계속 될수록 이것은 이미 많은 제보가 있었던 사건들임이 계속 드러나는데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이 어마어마한 사건들을 열심히 감추는 것이 아닐까하는 음모론이 의심됐었다. 그러나 영화 끝까지 음모론이란 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법률의 사각에서 약간의 편법으로 공개된 정보를 들고 회사로 향하는 마이클의 택시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사고가 날거 같이 긴장감을 주지만 영화 속에서는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는 오로지 진실을 찾아가는 기자들의 여정을 담담하게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드러날수록 어마어마해지는 사건은 이미 제보하지 않았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을 뿐 탐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쨌든 열심히 의심되던 보이지 않는 손은 결론적으로 이 기사를 끈질기게 탐사해온 팀원들, 편집장 등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 주장한 명제로 다시 돌아가서 게으른 진실 그 실체는 다만 더 깊이 따져보려는 호기심 혹은 의심이 없었다는 것, 더 심하게 말하자면 무관심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고백하던 팀장 로비는 이런 말도 덧붙인다. 자신이 지금 현재 이 보스턴 글로브에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보도가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어쨌든 진실은 드러나기는 하는 것이니까 그 때가 온 것일 뿐이다. 그동안은 그 때를 몰라보고 외면해 왔을 뿐이다. 로비는 그 과정 중 자신이 그 유린속에 서 있을 수 도 있었다는 사실에 피해자 들에게 깊은 미안함을 토로한다.
씨네 21의 안수찬 평론가의 글에서 이 보도 이후의 후일담을 알게 됐는데 2002년 1년 동안 이 사건을 19번에 걸쳐 보도를 했었고 그 다음에 퓰리쳐상 공동보도부문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글로브지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경영의 위기가 계속돼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주에게 헐값에 매각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매각의 이유도 레드삭스의 구단주가 자신의 야구단이 있는 보스턴에 대한 애정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 현재까지 그리 잘나간다는 소식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사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그 보스턴 글로브지에서 근무하고 있고, 작금에 언론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의 기자생활도 그리 순탄할 거 같지는 않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다.
이 영화의 중요한 지점은 의심과 관심 그리고 성찰의 필요성이다. 이를 위하여 영화는 화려한 영화적기교의 유혹을 다 뒤로 밀어 놓는다. 언론의 위상이 나날이 추락해 가는 현실 속에서 그 보도의 태도가 문제시 되는 많은 언론들이 존재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이유를 의심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는 자신들의 모습에서 찾고 있다. 언론인들이 만드는 소소한 기사 하나하나는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의 행방에 대해 무었이든 할 수 있는 무한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무기를 가지고 언론들은 지금까지 그 권력을 어떻게 휘둘러 왔는지에 관한 가장 단순한 모습이라도 이 영화는 거부하지 않고 보여준다. 너무나 평이하게 흘러가는 영화에 왜 아카데미가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마도 이 영화의 평이함은 언론의 직무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기 위한 포석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엄청난 사건을 만나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열심히 취재하고 팩트를 전달해야하는 언론의 사명은 끊임없는 의심과 뼈아픈 성찰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