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ron A Jun 04. 2024

늦은 아침 - 메이트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04

          GTO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뭐 열심히 챙겨 본 것은 아니지만 몇 년 전에 같은 실험실에 있던 박사과정 친구가 이 만화를 정말 좋아해서 그 친구가 차곡차곡 쌓아둔 애니메이션을 봤었다. 솔직히 내용이 많이 기억나지는 않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그리 열심히 챙겨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내용 말고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 GTO 애니메이션의 엔딩 크레딧이다. 투니버스에서 방영할 때 이 애니의 1기 앤딩을 보고 정말 감탄을 했었다. 음악이 흐르는데 학교 뒤쪽일 듯한 철장 앞 난간에 거의 뭐 누는 폼으로 쪼그리고 앉은 오니즈카가 무심하게 담배를 피우며 연기를 날리는 장면이다. 연기로 모양도 만들어 보고 하늘도 함 쳐다보고 한숨도 함 쉬어보고 그리고는 다 핀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비벼 끄고 일어나 하품 한 번 크게 하고 터벅터벅 아마도 왔었던 길을 뒤돌아 걸어간다. 짠하게 무심한 그 모습이 이상하게 위안이 됐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방송을 사수는 못해도 그 앤딩 만은 바뀔 때까지 열심히 챙겨봤다. 재밌는 건 일어 버전의 곡은 그런 무심한 느낌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니버스에서 방송한 한국어 버전에 맞춰진 그 장면만이 무심함의 극치였다. 나른하고 편안하고 그리고 대책 없는 의리파인 그 성격처럼 오니즈카의 매력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었다. 자막이 옆에 오르면서 계속 오니즈카의 담배 피우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거의 롱테이크에서 컷이 바뀌는 비벼 끄는 담배 그리고 바뀌어서 오니즈카가 길게 하품을 하고 돌아서 간다. 역시 활동사진(?)은 호흡이 정말 중요하다.

https://youtu.be/RgOu7kVORQU?si=UnRCjDscpZezLCS4


또 서론이 길었다.


 그 이후에 그런 인물의 무심함이 잘 드러난 걸 보지 못했는데 영화 <플레이>에 나오진 않았지만 OST에 들어간 이 [늦은 아침]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간만에 이 GTO의 엔딩을 떠올렸다. 늦은 오후에 시작하는 일과,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저무는 하루. 메이트의 세 멤버가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에서 무심히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며 책을 보다가 카메라가 부감이 되며 느닷없이 공놀이를 시작하더니 먼저 시작한 사람이 지쳐서 다시 돌아와 픽 쓰러져 버리는 그것을 카메라는 또 천천히 따라와서 머문다. 원 씬 원 컷으로 찍힌 이 뮤직비디오는 너무나 각박한 세상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잠시나마 현실의 복잡함을 벗어나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 비록 내일이 어떻게 될지 이 일상이 계속 지속될 수 있을지 아니면 인생을 뒤흔드는 롤러코스터 같은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공놀이처럼 그리고 아무데서나 뻗어 누워도 뭐라 할 이 없는 편안한 사람들끼리 정말 오래간만에 너무나 마음에 든 뮤직비디오였다.

https://youtu.be/ApUV7PQ8b-8?si=oajDkqUgzvA2Y8Gu


 풍성한 목소리를 가진 정준일의 편안함과 약간은 나른하게도 느껴지는 임헌일의 기타 그런데 이 조화가 정말 좋다. 얼마 전 정준일의 공연에서도 느꼈지만 정준일의 목소리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임헌일의 기타 연주의 조합의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 <플레이>도 괜찮았지만 아마도 이 뮤직비디오가 결정적으로 메이트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앞에서 말한 GTO 1기 엔딩처럼 간만에 보는 편안함. 이 불편하고 떠밀리는 세상에서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위로가 되는 모습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뚝심송님을 그리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