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선택 2 (유능감, 자괴감)우러러 본 희망이 압도적 속도가 되어
그리도 원하는 교육대학원 상담교육전공으로 입학했건만, 그 기쁨은 딱 6개월 갔던 것 같다.
적어도 합격한 날로부터 6개월 동안은 '세상에서 나만큼 행복할 사람이 있을쏘냐', 내가 그토록 원하던 학교 현장에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교육자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정말 좋았다. 또한, 2년 동안 돈을 벌면서 정체되어 있고, 성장하지 않는 것 같은 그 느낌으로 벗어나 내게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 행복했다.
1주일에 1번 대학원을 가고, 그 외에 시간은 학교 현장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노라면 내가 성장하고, 원하는 현장에 속해 있다는 쾌감을 불러 있으켰다.
적어도 합격 후, 5개월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행복도 잠시 그 관련 현장에서의 문제는 점차 눈덩이가 되어 커지고 있었다. 관련 현장이란 전문상담교사를 꿈꾸고 있으므로 '학교'를 말하는 것인데, 상담은 아니었지만 나의 또 다른 전공인 사회복지학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잠시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계절제 교육대학원을 다니고 있노라면, 방학 때 학교를 가야 하고, 선수학기 때도 주 1일 학교를 가야 하며 교육봉사도 해야 하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전에 면접을 봤던 학교시회복지사 중 나를 좋게 봐주신 학교사회복지사 분의 추천으로 타지역에서 학교사회복지사 수련을 할 수 있었다.
나의 꿈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버텨주는 인력이 되는 것'이었으므로 많은 길을 열어두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학교 1 전문상담교사 또는 학교사회복지사로 규정이 청원에 올른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 내게는 여러모로 학교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또 하나 열린 것이었다.
그렇게 실무 경험이 듬뿍 담긴 상반기 이론 강의, 실무수련 350여시간을 채웠다. 점심마다 여러 아이들을 만나고, 방과후에는 1:1로도 만났으며, 어느 날은 지역사회에 있는 사회복지 전문가들과 이야기도 하고 프로그램도 같이 한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피드백을 주시는 지도자분과의 맞지 않는 부분들이 좀 있었던 것 같다. 피드백이 도움이 될 때가 있었지만, 어떨 때는 어떤 잘못을 하면, 나의 어린시절 이야기와 연결 시킨다든지, mmpi-2 검사 결과지 중 우울 정서를 문제 삼고, 사회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함으로 나는 은연중에 '동기보다 잘해야 해' 경쟁의식도 생기게 되어, 같이 수련 받는 동기에게도 민폐라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
물론 그 분도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전문가였지만, 때로는 그 피드백이 나 조차 나를 의심하게 하고, 하지 않은 걸 한 것처럼 생각해야 할 때가 생겼다.
그렇게 점점 갈등이 깊어져왔고,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자의반(?) 타의반(?) 학교사회복지사 수련을 그만두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있는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고 그만둔 일이었다.
수련을 그만두고 적어도 한 일주일간은 정말 좋지 않은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내가 고통을 감내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나의 근간을 흔들어버리는 피드백과 내가 믿고 보여준 전 종합심리검사지에 대한 결과상을 이유로, 내 우울감을 건드린 것들이 순식간에 나에게 무력감으로 다가와 덮쳤다.
그러나 그런 우울함에 빠져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러면 내가 아이들의 감정을 일부 다루어야 하는 그 수련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되니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은 내 그 아픔을 묻어두고 다시 일상을 살았던 것 같다. 그로부터 한 6개월 정도는..
마침, 교육대학원 첫 집중학기가 개강하기도 하기도 했었다.
아, 우습게도 수련을 그만두고 우연히 '심리검사' 교과목 시간에 mmpi-2를 재검사하였더니 우울 척도 점수가 정상화되었다.
대학원 첫 계절학기가 끝나고 나는 나의 건재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시 일어나 도전했다. 원래 하려고 했던, 좀 더 확실해진 상담교사의 목표를 향해.. 상담 경험을 더 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위센터 인턴 등에 지원을 했다.
결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