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깨는 게 너의 틀이야."
각자의 언어 습관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언어 프레임이 있어 사람은 그 틀대로 말하고 소통한다. 심리학 용어로 ‘틀 짓기(Framing)’ 이다. 같은 상황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르게 반응한다.
자주 쓰는 말투를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바꿔 말하면 내적인 요소가 바뀐다.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말투라는 형식 먼저 바꿔보자.
언어 프레임이 생각을 좌우한다. 생각과 감정이 바뀐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도 적용된다. 어떻게 말하냐에 따라 똑같은 질문에 정반대의 대답을 얻게 된다.
EBS 다큐프라임 「킹메이커 2부」에서 이와 관련된 실험 결과를 방영했다. 한국철도공사에서 KTX 민영화에 대해 다른 언어 프레임으로 질문했다.
질문①. KTX 일부 노선을 사기업에 매각하는 것에 찬성하십니까?
질문②. 고속철도의 경쟁체제 도입에 찬성하십니까?
질문①에 대해 찬성 17표, 반대 100표로 반대가 현저히 많았다. 질문②에 대해서는 찬성 100표, 반대 60표로 찬성이 월등히 많은 결과가 나타났다. 똑같은 내용의 질문인데 상반된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사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므로 사용자의 부담이 증가할 거라는 추측에서다. 반면 ‘경쟁체제 도입’은 서비스 질이 향상되면서 사용자의 부담이 줄어들 거라는 예측에서 나온 결과이다. 실험을 통해 언어 프레임 즉 말투라는 형식에 따라 내면의 생각이 바뀜을 알 수 있다.
롤프 도벨리의《스마트한 생각들》에 또 다른 연구가 있다. 1980년대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역병 퇴치 방법에 대해 설문 조사를 했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600명의 생명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퇴치 방법 A와 B 중 하나를 선택하라.
A: 20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B: 600명 모두를 구할 확률은 3분의 1이고 전혀 구하지 못할 확률은 3분의 2이다.
실험 결과 설문 조사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은 A방법을 선택했다.
두 번째 설문 조사에서는 A와 B를 다른 말로 표현하여 다시 선택하도록 했다.
A: 400명의 목숨을 죽게 한다.
B: 600명 모두 죽을 수 있게 할 확률은 3분의 2이고 아무도 죽지 않게 할 확률은 3분의 1이다.
결과는 설문에 참여한 소수의 사람만이 A의 방법을 선택했고 대부분은 B를 선택했다. 두 번의 설문 조사는 똑같은 내용의 질문이었고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첫 번째 설문에서 ‘구할 수 있다’는 언어 표현을 두 번째 설문에서 ‘죽게 한다’라고 바꿔 말했다. 똑같은 내용을 말투라는 형식만 바꿨을 뿐인데 전혀 다르게 선택한 것이다. 언어 프레임은 생각을 지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담 사례 중 하나이다.
그녀의 직업은 유치원 교사였고 학부모를 대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최근에 한 아이가 유치원을 그만두었고 이유는 아이 엄마가 매우 예민하다는 것이었다. 그녀와 아이 엄마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들은 후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엄마가 잘 다니던 유치원을 그만둘 수 있었던 심리적 이유에 대해 해석해 주었다. 아이 엄마는 교사의 말 중에서 “아이가 이상하다”는 언어 프레임을 흡수한 것이다. 상한 감정 이면에는 교사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 사람이 느끼는 공격성 이면에는 불안함이 있다. 교사가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엄마의 생각과 행동 요인이 결정된다는 것을 안내 상담해 주었다.
- 교사: 검사를 하세요. (공격적인 언어 프레임 말투 X)
- 교사: 제가 그쪽의 전문가가 아니니 아이의 수준을 알면 현장에서 돌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공감적 인 언어 프레임 말투 O)
이렇게 말의 형식을 바꾸어 말했더라면 달라졌을 것이다. 아이 엄마는 마음을 공감받았다고 느끼며 유치원을 그만두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배우가 연기할 때 감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감정을 먼저 잡는다. 그러나 때로는 그 감정이 나올 수 있도록 먼저 호흡을 다스린다. 자세 또한 바꾼다. 이렇게 형식 즉 겉을 먼저 준비해서 정비하면 안이 바뀔 수 있다. 즉, 형식이 내면의 감정을 바꾼다.
슈테판 클라인은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에서 빈코프스키의 사례를 통해 말한다. 호흡이라는 형식에 따라 말의 박자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피아니스트들에게 더 빠르게 숨 쉴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그들은 더 빠르게 피아노를 쳤다.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빨리 치고 있었다. 이는 피아니스트에게 호흡이라는 형식이 연주하는 박자 즉 행동을 결정짓는 메트로놈이었음을 알게 한다.
신나는 노래에 몸으로 박자를 맞춰 춤을 춰보자. 노래에 맞는 감정이 더 자연스럽게 발산될 것이다. 이는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50년 연구에서 결과로 밝혀졌다. 말과 행동으로 감정을 끌어내는 것이 반대의 경우보다 더 쉽다는 것이다. 말과 행동을 바꾸기 위해 내면을 갖추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KBS 2TV 오피스 드라마 「회사 가기 싫어_5회. 슈퍼우먼은 없다」에서 ‘슈퍼맘’에 대해 다루었다. 역할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여 말대로 역할에 맞게 발전할 수도 있다. 반면 부작용도 있다. 일하며 육아와 집안일을 모두 잘하는 사람을 일컫는 슈퍼맘이라는 말은 부담이다. 슈퍼맘이라는 말의 형식을 통해 많은 여성이 필요 이상의 부담감으로 완벽을 추구하고 있다. 슈퍼맘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되어야 할 것만 같아 열심히 산다. 말을 쫓다 보니 몸이 소진된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슈퍼맘이라는 말에 내면이 얽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 프레임은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언어 프레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먼저 습관적인 말을 파악한다. 입에서 나오는 말로 나의 내적 상태를 파악한다. 상태가 안 좋을 때란, 공적이든 개인적이든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을 때이다. 스트레스로 하게 되는 말을 내 뇌가 들으며 또 다른 스트레스로 연결된다. 이럴 땐 일부러 의식하며 다른 말을 한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와, 진짜 황당하다.”라고 말하는 자신에게
“그럴 수도 있지”, “다 몰라서 그래", “(스스로 쓰다듬으며) 괜찮아! 잘하고 있어.” 라고 의식적으로 바꿔 말한다.
자신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말투가 있는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내면에 따라 달라지는 자기 말투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상태가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 주로 쓰는 말투를 구분하고 기록해 보자. 의식적으로 형식을 바꾸면 내면이 바뀐다. 말로 인해 내면 상태가 좋아질 것이다.
언어 프레임에 따라 사람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이든 자신의 말이든 말의 형식에 따라 생각이라는 내면이 바뀐다.
우리에겐 늘 하는 말이 습관이고 습관화된 언어 프레임은 생각을 지배한다. 그 생각의 방향이 인생을 만든다. 습관적으로 표현되는 말의 형식을 바꾸면 내면도 바뀌어 인생에 놀라운 변화를 불러온다.
2020년 8월에 출간된 책, 김정기의 "참 괜찮은 말_마음을 담다" 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