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1년 살이의 기록들 6
아들은 2013년생, 한국 나이로 13살이다.
영국으로 1년 살이를 오게 된 건 전적으로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였다.
4년 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피눈물 나는 유학생 생활을 이미 해봤기 때문에
나와 남편은 외국 생활에 전혀 환상이 없다.
오히려 그 고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영국 출국 시간이 다가올수록 낭떠러지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달까...
그래도 외국에서 학교를 다녀 보는 건 여러 의미에서 정말정말 좋은 경험이란 걸 알기에
빠듯한 살림이지만 과감히 영국행을 결정했다.
사실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에 처음 영어학원에 갔다.
외국어는 모국어의 틀이 잡히고 어휘력이 충분이 갖춰졌을 때 배우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아이가 더 어렸을 때 영어 조기교육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도 영국으로 1년 살이를 결정하고 나서는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가서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면 괴로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3년 동안 학원에 다닌 결과, 미국 초등 저학년용 챕터북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래도 원어민과 대화를 해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말문은 전혀 트이지 않았다.
'하... 이 아이가 영국에서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을까...'
나의 영국 1년 살이 걱정 보따리의 절반은 바로 이 걱정이었다.
하필이면 영국은 학제가 달라서 만 11살이면 7학년, 즉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다니게 된다.
게다가 영국은 중고등학교를 secondary school 하나로 묶어 운영한다.
즉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니다가 갑자기 고등학교 형들과 함께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말!
혹여 어린 동양 남자아이를 괴롭히는 불량 고등학생이 있으면 어쩌지, 걱정만 한 가득이었다.
그런데 웬걸.
아이는 영국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첫 날부터 빛의 속도로 적응을 했다.
매일 아이를 차로 데리러 가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현지 아이들과 재미있게 이야기하면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도대체 저 아이는 어떻게 다른 아이들의 말을 이해하고, 어떻게 대답을 하는 걸까...
심지어 등교와 거의 동시에 수학과 영어 시간에 월반하고,
이제 막 시작한 프랑스어 시험에서 상위권 성적을 받기도 했다.
아이의 가방에 숨어들어가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지 훔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아이가 특히 좋아하는 시간은 드라마 클래스, 즉 연극 수업이다.
한국에서도 초등학교에서 연극 발표 시간을 즐겼던 아이는
매주 드라마 클래스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틱톡'이라는 캔디 통을 이용해서 즉석 연기를 펼친 경험담을 이야기할 때의 뿌듯한 표정이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엄마, 나는 연기자가 되면 악역을 할 거야. 난 예전부터 악역들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라고 이야기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늘 엄마의 걱정보다 낯선 상황에 훨씬 더 잘 적응한다.
어른보다 생각이 열려있고 유연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일까.
무언가 갖춰져야 시작할 수 있다는 어른의 생각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부족한 영어로 더듬더듬 이야기하면서 “내 의도가 전달되면 그 뿐이지!” 쿨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남은 10개월 동안 더욱 다채로운 '다름'과 마주치며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