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넌 Nov 02. 2021

SLOW! WOW! SLOW!

어느 한 20대의 느릿느릿 브랜드 제작기

|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15살에는 영어선생님, 17살에는 방송국 pd, 18살에는 스포츠 마케터, 20살에는 그래픽 디자이너, 21살에는 엔터테인먼트 A&R, 22살에는 엔터테인먼트 비주얼 디렉터, 23살에는 카페 창업. 이 직업들이 한 달에도 여러 번 바뀌었다. 심지어 단기간에 밤을 새워 가며 작업하다가도 바뀌는 경우가 있다. 줏대가 없는 건지 정신이 산만한 건지.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엔터 쪽의 비주얼 디렉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열심히 만든 멋있는 음악이 내가 디자인한 앨범 피지컬에 담기는 것. 아직도 설렌다. 실제로 3년 동안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낸 것은 디자인 관련 작업뿐이었다. 비전공자였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진정으로 하고 싶다면 누구보다도 시간 투자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령이란 없었고 작업량으로 승부했다. 하드에 버려진 작업물도 엄청 많다. 취향도 확고해서 그 스타일을 정립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연구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는 비주얼 디렉터가 되기 위해 내가 세워놓은 플랜대로 착실히 준비해 나가는 중이었다.


| 그러다가 멈췄다.


어느 순간 난 기계적으로 하고 있었고 목적성을 잃은 듯이 눈이 빠져라 모니터만 봤다. 인정을 받지 못하고 누군가 알아봐 주지 않으니 자존심이 많이 상하기도 했다. 부족함에도 배우려고 하지 않았고 내가 하던 것만 계속해나가면 누군가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몇 번의 제안도 있었지만 내 욕망은 더 컸다. 객기였던 것 같다. (멈춘 이유 1)


어쩔 때는 재미도 없고 멋있어야 한다고만 생각하며 작업했다. 멋있고 느낌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고 그에 맞는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마이너한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아마 알 거다. ‘쟤 만나면 저런 느낌은 아닌데..’ (모른다면 뭐.. 약간 민망하지만) 척하는 기분이 정말 별로였다. (멈춘 이유 2)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나 뭐 제일 잘하지. 나 뭐 제일 좋아하지. 지금껏 해온 게 아깝고 아쉬워서 노선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명확하게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포기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 브랜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단순히 멋있다는 것 말고 내가 디자인을 시작한 이유가 있었다.(멋있다는 게 크긴 하다.)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을 무언가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걸 비주얼적으로 표현하는 게 멋있어 보였다. 원래는 디자인이 목적이 아니라 내 생각을 나타내는 게 목적이었다. 디자인은 표현 방식 중 하나였던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내 생각,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내 생각과 아이디어가 들어간 활동은 디자인 말고도 다 즐거웠다.(예를 들면, 레크레이션 수업에서의 레크레이션 기획) '그럼 이제 내가 느끼는 솔직한 무언가로 살 궁리를 찾아보자. 멋있는 척 그만하고.' 결론 땅땅땅.


엄청난 고뇌처럼 보였지만 난 성격이 급해서 3일 만에 이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다. 이 기간은 생각보다 혼란스러웠다. 생각을 시작한 그날부터 3일이 생각의 데드라인인 것이다. (폰에 알람이 쌓여 있는 걸 못 참음) 결론은 '브랜드가 생각과 메시지 그 자체가 될 수 있겠다.' 또 이 '브랜드'라는 것이 내가 지금껏 하고 싶은 일들을 종합하여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고르지 못하겠으면 다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이상적인 생각이었다. 그래서 노선을 바꿨다기보다 페이즈 2가 좀 더 맞지 않을까 싶다.(같은 말인가?) 결국 난 브랜드를 만들어 보기로 했고 브랜딩을 공부해보기로 했다. 막막하긴 하다. 또 바뀌진 않겠지? 만들 수는 있을까? 어떤 브랜드를 만들게 될지 감도 안 온다.



| 가벼운 기록도 쌓이면 빛난다.


그런데 브랜딩을 공부하고 브랜드를 제작하는데 왜 글을 쓰느냐. 첫째로 이 기록을 내가 언젠가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벼운 기록도 쌓이면 빛난다.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과 내가 공부한 것들을 정리해 나갈 것이다.


브랜드/브랜딩 공부 과정(브랜드 메시지 중심으로)

브랜드 제작기(정말 느릴 것이고 형체가 안 보일 수도 있지만 내 메시지를 구체화할 것이다)

개인이나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

젊디 젊은 20대의 느린 삶.


이 4가지가 아마 크게 보았을 때 이야기의 주제일 것 같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룰 것이며 재밌고 가볍게 그리고 솔직하게 풀어보려고 한다. (이 글에 과거의 쿨한 척하는 김준헌은 없길 바라며) 독자 분들이 내 이야기를 같이 읽고 자극을 받고 서로 조언을 하며 각자 좋은 레이스를 펼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모은 지식들을 아낌없이 가져가길 바란다. 난 항상 무언가를 진행할 때 혼자서 진행하려고 했지만 이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피드백도 받아보려 한다. 팀이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많은 조언과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 'SLOWWOWSLOW'


둘째로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이야기 제목인 'SLOWWOWSLOW’에 담겨 있다. 기본적으로 느리게 나아가자는 것이다. 느리지만 정확하게 나아가자는 것이다. '아직도' 20대이다.


내 취미는 러닝이다. 러닝에서는 빨리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본인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본인의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본인에게 맞는 타이밍에 스프린트를 해야 빠른 기록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빠르게 달리거나 상대 선수의 스프린트에 맞춰 스프린트를 한다면 호흡이 깨지고 무너진다. 내 페이스에 맞게 뛰다가 근육이 풀리고 호흡이 정리되면 ‘와 진짜 평생 이렇게 뛸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느낀다. 그 페이스의 미학을 느끼길 바라며 지었다. 현재 내 페이스로 달리는 것이 행복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온 제목이 ‘SLOWWOWSLOW’이다. 그렇다고 평생 느리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느리고 꾸준히 준비해서 적절한 타이밍에 스프린트를 할 것이다. 난 휩쓸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주변은 한없이 빠르고 난 그 속도에 힘겹게 맞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속도와 방향이 맞는지 확인도 안 한 채 말이다. 내 또래나 20대가 많이 느낄 법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호흡 불안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좀 더 느려도 됩니다. 멈출 필요는 없지만 멈춰도 되는 시기이고요.' 20대는 자신의 정체성과 취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찾을 여유는 주어지는 게 아니고 본인이 부여하는 것이다. 나도 이 것들을 찾아가며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준비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한다. 나도 내 속도와 방향을 모른다. 그래서 느려지려고 한다. (참고로 내 브랜드 제작기는 좀 심하게 느릴 수도 있다. 한 10년, 20년? 그때까지 배우는 거지~) 그리고 속도와 방향을 찾고 빨리 달릴 준비가 끝난 분들, 현재 스프린트 중인 분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행복한 질주되세요.'


| 마무리


첫 글이라 힘이 너무 들어갔다.(수정만 20번째. 이 글에 절대 척이 없었으면 했다. 근데 없애니 전개가 이상하지만 더 못 읽겠다.) 재밌어야 될 텐데.. 이번 글은 좀 재미없고 진지했던 것 같다. 다음 글은 더 재밌게 쓸 테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