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로 알아보는 성격 테스트

경마 공원, 말의 해, 도박

by 김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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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은 붉은 말의 해. 병오년(丙午年)을 맞아, 과천 경마 공원을 방문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올해가 말의 해라는 사실은 경마 공원 방문을 마음먹은 후에 알게 되었다. 새해 첫 주부터 경마장에 가는 미친놈들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지만, 마침 의미가 맞아떨어져 명분이 생겼다. 경마 원정대는 총 4명. 경마 뉴비인 나와 퀀트 투자의 귀재 A, 경마 공원 방문 5회차인 B와 경마 중간에 결혼식을 다녀오겠다는 C.


경마 선배인 B는 4호선 경마공원역에서 내릴 사람을 미리 알아본다. 장갑과 군밤 모자를 착용했다면 100%. 추위에 베팅 의지를 꺾지 않겠다는 전사의 복장이다. 경마 공원 입구는 생각보다 밝다. 트리를 휘감은 것처럼 줄 조명이 걸려 있다. 에버랜드까진 아니지만, 지방 놀이공원에 놀러 간 정도의 셀렘이 감돈다. 그러나 놀이공원의 밝은 BGM 대신, 심상치 않은 붉은 옷을 입은 할머니의 응원이 들린다. 태엽을 감아 놓은 것처럼 ‘복 받아라~ 복 받아!’를 내리 외친다. 붉은 말의 해를 맞은 한정판 NPC가 아닌, 항상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고정 NPC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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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 공원에 5번째 방문한 B는 중독자가 아닌가 싶지만, 그에겐 철저한 원칙이 있다. 현금은 5만 원만, 카드는 절대 사용하지 말 것. 디지털 시대에 맞춰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베팅에 참여할 수 있지만, 자동결제 카드를 등록하는 순간 파멸이다.


현금으로 베팅에 참여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다. 현금 역할을 하는 ‘지갑 티켓’을 교환한다. 베팅 유형과 말을 골랐다면, 수능 이후 오래간만에 만나는 OMR 카드를 작성한다. 작성한 OMR 카드와 ‘지갑 티켓’을 기계에 함께 넣으면, 베팅한 돈과 말에 관한 정보가 기재된 ‘마권’을 발급받는다. 경주가 끝난 후, ‘지갑 티켓’과 ‘마권’을 함께 기계에 넣으면, ‘지갑 티켓’에 번 돈이 반영된다. 퇴장 시, ‘지갑 티켓’을 창구 직원에게 건네면, 현금으로 다시 교환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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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라면 이 복잡한 시스템을 따라잡는 게 꽤 버겁다. 경마 경주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에 17경주 정도 진행된다. 대략 25분 정도 간격을 두고, 멈추지 않고 진행된다. 25분은 긴 시간 같지만, 경주와 말을 분석하고 신중하게 OMR 카드를 작성하다 보면 그마저도 촉박하다. 물론 고수들은 베팅 종료 5초 전까지도 여유롭게 행동한다.


한 판 쉬어가도 괜찮지만, 올라가는 배당률을 보고 있노라면 한 판이라도 놓치기 싫다. 결혼식에 가기 전, C가 말한다. ‘사실 땄을 때 멈추면 이득이야. 못 멈춰서 그렇지’. 경마 공원에 있는 모두가 그 사실을 알 터. 가지각색의 억양으로 들려오는 육두문자를 들을 때면, 그 쉬운 법칙을 지키리란 어렵다는 것을 체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뇌는 점점 녹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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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 한 판에 보통 얼마의 돈이 걸릴 것 같은가? 한 판에 무려 약 28억씩 걸린다. 개인이 한 판에 최대로 베팅할 수 있는 돈은 10만 원. 대략 계산해 보면, 대한민국 국민 이천 명 중 한 명이 참여하는 꼴이 된다. 이 정도면 도박의 민족 아닌가.


경마를 주관하는 마사회는 경마가 사장 사업이 될 거라는 불안감이 있는 듯하다. 담배 냄새와 폭언이 끊이질 않는 메인 공간에서 떨어진 ‘2040 라운지’를 운영한다. 아이와 함께, 연인과 함께 경마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곳에선 초심자를 위해 베팅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실이 존재한다. 조금 나쁘게 생각하면, 경마 공원은 오늘도 열심히 미래의 도박꾼을 양성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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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공원역 역사 안에는 편의점이나 분식집이 아닌, 다른 용도의 상점이 줄지어 있다. 경험자 B와 C는 그곳에서 초심자인 나와 A에게 선물을 건넨다. 바로 2천 원짜리 경마 잡지. 거친 그래픽의 표지는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없던 수집욕이 끓어오른다. 내지를 펼치면, 눈이 아플 정도로 경주 데이터가 빼곡하다. 말의 이름만 보고 베팅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잡지 없이는 그저 투기에 불과하며, 잡지를 바탕으로 철저히 분석하며 고심 끝에 베팅해야 한다. 애널리스트의 논평, 말과 기수의 궁합, 경주 당일 새벽에 관찰한 말의 상태, 그리고 혈통과 부모의 이력까지. 정답은 없지만, 저마다 유의미하다고 믿는 데이터를 근거로 선택을 내린다.


같이 방문했던 네 명 모두 다른 데이터에 집중하며 베팅했다. 어쩌면 경마 베팅 방식이 그 사람의 성격을 드러내는 좋은 지표가 될 수 있겠다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적더라도 코 묻은 돈이 걸렸을 때, 인간은 본성을 발휘하지 않을까? 행복이라는 동일한 목표로 살아가는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만들어 가듯, 베팅 성공이라는 동일한 목표로 행동하는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베팅에 참여하는 것. 그래서 만들어 보았다. 이른바 ‘경마로 알아보는 성격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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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A 타입: Ability 능력우선주의

나르샤, 골든디바, 질풍아. 남다른 말의 이름 뒤엔, ‘마필 능력 그래프’가 있다. ‘스피드’는 평균 속력, ‘선행력’은 스타트와 초반 속력, ‘추입력’은 스퍼트와 후반 속력이다. A 타입은 측정할 수 있는 말의 스펙, 전적, 히스토리에 집중하며, 다른 변수 따위는 말의 압도적인 기량 앞에서 무기력하다고 말한다. 특히 능력치가 낮은 말이 이변을 일으키면 조작을 의심한다.


A 타입 중 몇몇은 말들의 부모를 보는 지경까지 이른다. 실제로 중장거리 스타 부부인 엄마 ‘한라축제’와 아빠 ‘섀클포드’ 사이에서 태어난 ‘치프스타’는 ‘괴물신예’라는 별명과 함께 3전 3승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치프스타’의 우승 배당은 ‘1.0’. 만 원을 넣으면 만 원을 고스란히 돌려받는다. 그만큼 압도적인 기량을 펼치고 있는 것. 그날도 ‘치프스타’는 이변없이 우승을 차지했다.


A 타입 특징

실패를 개인의 역량 문제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

정량화할 수 있는 지표에 먼저 주목한다.

감정이나 사정은 판단을 흐리는 변수로 여긴다.


평소에 이런다면, 당신은 A타입?

별점 4점 이하의 맛집과 영화는 애초에 거른다.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를 고를 때, 인성보다 능력을 먼저 본다.

친구와의 내기 전적을 은근히 기억한다.

스포츠를 처음 볼 때, 대개 1위 팀을 응원한다.


잘 맞는 유형: C 타입

잘 맞지 않는 유형: I 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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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E 타입: Expert 권위우선주의

경마에선 가장 안전한 베팅 방식으로 손꼽힌다. 10명 정도의 전문가들은 매 경주 예상 1등에서 예상 5등을 선정한다. 우세할 것 같은 이유에 관한 논평도 함께 적는데, 사실 큰 이변이 없는 이상 우승자는 그 리스트에서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다. E 타입은 자신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은 전문가의 말을 신뢰한다.


E 타입 중 몇몇은 자신이 신뢰하는 전문가에게 선택을 위탁한다. 심지어는 말이 아닌 전문가를 분석한다. ‘윤택은 제주 경주 전문이야’, ‘이 사람 픽은 걸러’라며 말이다. 그러나 E 타입도 거르는 전문가가 있다. 바로 ‘고배당 전문인’. 고배당만을 노리는 사람들을 위한 분석가이지만, 사짜 느낌이 물씬 나기에 E 타입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히 갈린다.


E 타입 특징

타인의 말에 경청한다.

정보보다 출처가 더 중요하다.

혼자만의 결정을 믿지 못한다.

조그마한 문제도 함께 논의한다.


평소에 이런다면, 당신은 E 타입?

네이버 뉴스에 나오는 건강 관련 기사를 신뢰한다.

블루 리본, 미슐랭 가이드를 사랑한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가수 심사위원이 나오면 불편하다.

전자기기를 구매하기 전, ‘기즈모’를 시청한다.


잘 맞는 유형: A 타입

잘 맞지 않는 유형: R 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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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R: Relationship 관계우선주의

경마는 말 혼자 하는 경주가 아니다. 기수의 역량 역시 결정적이다. 흔히, 경주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말 70% 사람 30%’라고 말한다. 아무리 뛰어난 말이라도, 기수가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그 기량은 무력해진다. 유독 기수와 말의 궁합이 좋을 때가 있다.


R 타입은 이 지점에서 ‘해당마 기승전적’이라는 데이터에 주목한다. 특정 말이 어떤 기수와 함께 뛰었을 때의 전적과 승률을 보여 주는 지표다. 호흡을 맞춘 횟수가 많을수록 신뢰도는 올라간다. 연습 주행에서 말이 갑자기 서거나 게이트에 들어가지 않고 말썽을 피우면, 말짱 도루묵이라며 경주를 더 이상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R 타입 특징

갈등을 싫어하고, 좋은 관계를 위해 양보한다.

편 가르기를 잘한다.

개성보다 화합을 중요시한다.

차이점보다 공통점에 주목한다.


평소에 이런다면, 당신은 R 타입?

학창 시절, 이름점에 몰두했다.

잘 맞지 않는 MBTI와 친해지기 어렵다.

절친이 화장실에 갈 때, 함께 간다.

커플룩을 먼저 제안해 본 적이 있다.


잘 맞는 유형: 웬만하면 다 잘 맞는다.

잘 맞지 않는 유형: A 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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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C 타입: Condition 상태우선주의

C 타입은 전적이나 능력보다도, 말이 오늘 얼마나 좋은 상태인지가 더 중요하다. 잡지 내에서는 ‘새벽조교 단평’을 유심히 본다. 애널리스트가 새벽에 직접 말을 살펴보고, 그날의 상태를 기록한 코멘트다. “부상 이력 있으나 현재는 양호”, “근질이 좋아 기대된다” 같은 문장이 이들의 판단 근거가 된다.


가장 민감하게 보는 지표는 말의 체중 변화다. 어린 말의 증량은 성장으로 해석되지만, 노마의 증량은 오히려 컨디션 저하로 본다. 어떤 이들은 기수의 몸무게까지 체크한다. 실제로 연말 내내 파티를 즐긴 듯 8kg이 늘어난 기수가 낮은 순위로 밀린 경우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아예 말을 직접 보러 간다. 경주 전, 말들을 따로 관찰할 수 있는 공간에서 눈으로 컨디션을 확인한다. 심지어 배변 여부를 체크하는 사람도 있다. 출발 전에 배변하면 몸이 가장 가벼워진다는 이유에서다.


C 타입 특징

몸을 지극히 아낀다.

변화보다 일관성을 선호한다.

환경이 바뀌면 잘 적응하지 못한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변한다.


평소에 이런다면, 당신은 C 타입?

내기에서 컨디션 핑계를 댄 적이 있다.

약속 전날, 잠을 못 자면 괜히 불안하다.

중요한 날엔 루틴대로만 행동한다.

시험공부 도중, 책상 정리에 몰두한 적이 있다.


잘 맞는 유형: A 타입

잘 맞지 않는 유형: I 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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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I 타입: Instinct 본능우선주의

I 타입에게 잡지는 이들에게 참고 자료일 뿐이다. 말의 이름, 오늘의 분위기, 무엇보다 내 감이 가장 중요하다. 남들이 전적과 수치로 고심할 때, I 타입은 생각보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다. 이들은 잡지를 메모장으로 사용한다. 번호를 찍거나, 맘에 드는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하게 고배당에 베팅하는 경우가 있는데, 당연히 성공률이 높지 않다. 하지만 한 번 걸리면 대박이다.


특히 I 타입은 서울 경주보다 제주 경주에서 빛난다. 제주에서는 체구가 작은 조랑말들이 뛰는데, 능력치의 격차가 크지 않고 변수가 많다. 이변이 잦고, 인기마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경주도 흔하다. 이곳에서는 데이터가 종종 무력해지고, 감이 힘을 얻는다.


I 타입 특징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고집이 세다.

틀려도 남 탓을 하지 않는다.

남들이 안 고르는 쪽에 더 끌린다.

기나 흐름, 운명론을 믿는다.


평소에 이런다면 당신은 I 타입?

‘왜?’라는 질문에, ‘그냥’이라고 답한 적이 많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이들을 경멸한다.

‘기분파’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충동구매가 잦다.

한 번 꽂히면 주변의 만류에도 끝까지 간다.


잘 맞는 유형: 없다

잘 맞지 않는 유형: 없다



참고로 필자는 I 타입으로, 마지막에 15배를 먹는 기염을 토했다. 이 맛을 잊지 못해, 다가올 봄에 한 번 더 방문할 예정이다. 물론 성격 테스트는 재미로만 봤으면 한다. 이 테스트를 참고해, 친구 혹은 애인과 함께 경마 공원에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스스럼 없는 친구라면 ‘너 네이버 뉴스에서 아침 사과가 나쁘다고 하면 안 먹지?’라는 뼈있는 농담도 건네보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경마 공원의 울타리에 적힌 격언을 첨부한다.


‘경마, 여가로 즐겨야 끝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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